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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Nov 15. 2024

친구가 필요한 날

 - 우정(友情):친구 사이의 정

 - 친구(親舊):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군인이 된 나는 누구와 우정을 나누고 있는가.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친구일지도 모른다. 나는 친구가 필요하다. 몹시 필요하다. 군인인 나를 넘은 나 개인의 친구가 필요하다. 만나면 경례가 오가고 '다나까'를 사용하며 군인의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들 말고, 개인을 내보일 수 있는 친구. 동료 말고, 선후배 말고, 상사 말고, 소대원 말고... 이 도시에서 누가 나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까.

 비어있는 나의 시간, 나는 책을 읽는다. 어디를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지 알 수 없는 시간 나는 책을 읽는다. 군인이 되기 전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무엇을 하며 살던 사람이었을까. 나는 누구였을까. 조금씩 내가 아는 나를 잊어가며 나는 그저 책을 읽는다.

 군인이 된 나의 우정의 자리가 자주 비어있는 이유를 안다. 지금 나는 성격과 관계없이(물론 좋은 성격도 못되지만.) 친구가 없기 쉬운 위치에 있다. 일단, 조직 생활의 한계에서 비롯된 부분이 있다. 현역인 우리는 공적 관계로 엮여있다는 것. 같은 곳에서 근무하는 한 그것을 초월하기 어렵다는 것. 그래서 우정의 단계로 넘어가기 어렵다. 다음은, 내가 남자가 절대 다수인 군인 집단의 미혼 여자라는 위치에서 비롯된다. 군대는 이공계열 혹은 특수 업종의 남초 집단과 비슷하지만, 한편으로 결을 달리하는데 가장 큰 특성으로는 '고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외부와 '고립'된 '군'이라는 세계의 몇 안 되는 미혼 여자. 의도치 않게 오해를 사거나,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성별. 여느 군인과 다름없이 안면 위장을 하고 소총을 메고 훈련에 임해도, 탄약고에서 예초기를 돌리며 제초작업을 해도 '여자'의 이미지는 좀처럼 내게서 분리되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때로는 우정 이상, 동료 이상을 원하는 상대에게 동일한 마음이 없으면 거리를 둘 수밖에 없고, 불편할 것 같은 모임은 피하게 되며, 때로는 즐거운 모임일지라도 자기 검열이 나를 가로막기도 한다. 이때의 자기 검열은 이런 류의 자기 검열이다. 남자 동료들과 사적인 자리에서 어울리는 것이 자주 목격되면 그것이 어떠한 뒷말을 가져올지 알 수 없어서. 또한, 그러한 시간을 자주 보내는 것이 이 시기의 나에게 도움이 될지 도움이 되지 않을지 알 수 없어서. 이 시기라면 구체적으로 지금 이 나이를 지나고 있는 나에게... 그래서 나는 때로는 사적 모임에서 배제되거나 때로는 스스로 거리를 둔다. 끝으로는 그럼에도 분명 나의 성격도 한몫할 것이다. 어디서나 이질감 없이 어울리기에는 (내심) 사람을 가리는 예민함. 느낌으로 가까이할 사람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분류하고 그래서 좁은 이 세계에서 더 좁은 인간관계로 나는 고립되고 있다. 자의로, 타의로. 

 사실 이 도시의 민간인들과 사람 대 사람으로 교류하고 싶지만, 예측불허의 일상을 사는 내게 좀처럼 기회가 없고 자주 지쳐있는 나는 그만한 열정도 없다. 그나마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옆방 동기가 있지만 그 친구의 자리는 자주 비어있다. 

 결국 이 모든 이유로 나는 친구가 없고, 친구가 필요한 시간 친구의 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운다. 그중 가장 안전하고 도움이 되는 도피 수단은 내게는 아마 책이리라.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혼자임을 잊기 위해, 나를 다른 것으로 채우기 위해, 정신을 돌리기 위해. 그리고 이 조직에서 버티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이 많기에 나는 책을 읽는다. 우선 리더십 분야의 책을 읽었다. 소대장의 자리가 부담스러웠고, 중간 관리자의 입장도 어려워 뭐라도 알아야 했다. '존 맥스웰(John C. Maxwell)'을 리더십 분야 멘토 삼아 그의 모든 이론을 머릿속에 넣고 싶어 그의 책들을 섭렵했다. 그리고 '데일리 카네기'로 넘어갔다. 사람이 많은 이 조직에 잘 섞이기 위해 인간관계론을 알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읽어봤다. 남자라는 존재도 결국에는 사람일 테니. 본질은 같겠지만 나의 상황(특수 성별)이 달라 카네기의 책이 크게 도움 된 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동안은 다른 것들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열심히 밑줄까지 치면서 읽었다. 그 후, 자기 계발서와 에세이로 넘어갔다. 그 책들은 마음을 지탱하려고 읽었다. 자주 공허해지는 마음을 어르고, 비어있는 혼자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가슴속에 열정을 품은 이들의 책을 읽으며, 그 열정의 불씨가 내게도 옮겨붙길 바라며. 누군가의 소망이 담긴 책, 꿈이 담긴 책, 삶의 고비를 이겨낸 책에 담긴 뜨거운 에너지를 옮겨 받기를 바라며 읽었다. 가끔은 그 불씨를 옮겨 받지만, 찰나의 순간일 뿐 나는 다시 공허해진다. 그렇다면 장소를 옮겨본다. 좁은 방을 벗어나 집 근처 카페로. 때로는 시내로. (시내에 혼자 나가 누군가의 눈에 띄었고, 쓸쓸해 보인다는 소리가 신경 쓰여 시내 외출은 접었다.) 어떤 휴일은 한 마디도 안 하고 그저 책을 읽고 또 읽다가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곳의 저수지도 쓸쓸할 때 가면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고, 오히려 쓸쓸함이 배가되었다. 그도 아니면 비교적 부담이 적을 것 같은 모임은 거절하지 않고 참석하기도 한다. 업무로 엮이지 않는 다른 중대의 모임이나 유쾌한 사람들이 있는 모임에. 괜히 나갔다 싶은 자리도 있지만, 생각보다 즐거운 자리도 있다. 그럼에도 그 모든 끝에는 공허가 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방으로 다시 돌아오면 끝내 찾아오는 익숙한 공허. 그렇게 비어 있는 친구의 자리와 마음속 공허를 메꾸기 위해 나는 발버둥을 친다. 

 그럼에도 오늘은 조금 특별한 주말이다. 오늘은 마침내 새로 전입 오시는 여자 중대장님이 내 방에 오시는 날이다. 드디어 첫 만남이다. 사실 선배들 희망(?)처럼 무서운 분일까 내심 긴장했는데 얼마 전 통화를 떠올려보니 느낌이 좋다. 밝고 따뜻한 목소리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형의 여자 선배일 것을 예감했다. 아마 실제로도 좋은 분이겠지? 근데 3일 앞둔 이 취임식 때문에 업무 인수인계받으실게 많으신가 보다. 새벽 한 시가 되어가는데 아직도 안 오신다. 숙소가 구해질 때까지 이 방에서 며칠간 함께 지낼 예정인데 조금 긴장되긴 한다...

 오.. 드디어 선배님 전화다. 이제 곧 도착하신다고? 안 되겠다. 떨리니깐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려야겠다. 근데 뭐지... 왠지 친구가 생길 것 같은 이 예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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