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되고 나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마음을 울린 건 ‘희생’이라는 두 글자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내어주는 사랑만큼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값진 희생일지도 모른다.
토요일 아침, 나는 12시에 일을 마쳤다. 그런데 오늘은 행복이가 농구와 축구 경기를 모두 하는 날이었다. 농구 경기는 이미 내가 일하는 동안 시작돼 있었다. 실시간 점수로 확인해 보니 팀은 승리했지만, 행복이는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그 결과를 보며 잠시 주저앉은 마음이 들었다. ‘굳이 축구 경기에 가야 할까?’ 어차피 내가 가든 안 가든, 아이는 뛸 것이고 실력도 당장 달라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정말 열혈이 응원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가 운동을 월등히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 응원하러 가는 일이 점점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그냥 쉬자’는 생각을 억누르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 건, 두 번이나 골을 넣을 뻔한 행복이의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결과와 상관없이,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이유가 분명해졌다. 아이의 순간을 내 눈으로 함께 지켜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일이었다. 부모가 되어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모를 일이다.
그렇게 아이가 뛰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는 몰랐다. 부모님의 희생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그 사랑이 얼마나 나를 지탱해 주었는지. 만약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다면, 나는 조금 더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고, 부모님께도 더 잘했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깨달은 이 마음을, 나는 행복이에게 전하고 싶다. 희생은 단순히 무언가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언젠가 행복이도 이 마음을 이해하게 되기를, 그리고 그날이 왔을 때 나처럼 가슴이 뜨거워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행복이가 골을 넣지 못해도 시간이 되는 한 아이를 응원할 것이다.
부모가 자식과 함께 걷고, 웃고, 울고, 기다려주는 그 모든 시간이야말로, 세상 어떤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희생이라는 것을 행복이를 키우면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