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사 6년 만에 행복이를 만나다.

할머니가 너를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by Ding 맬번니언

드디어 목적지 멜버른에 도착했습니다. "날씨가 생각보다 덜 춥네" 김여사가 미소 짓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외투를 입지 않아도 될 만큼 딱 좋은 날씨이네요, 엄마." 제가 반가운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버를 호출하여 멜버른 집으로 갔습니다.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문이 열렸고, 안에서는 기다리고 있던 행복이가 환영의 의미로 만든 플래카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플래카드에는 '환영합니다. 할머니'라는 문구가 한글로 적혀있었고, 한 손에 Welcome이라고 적힌 풍선을 들고 있었습니다. 행복이는 그 플래카드와 풍선을 들고 할머니에게 달려가며 환한 미소로 반겼습니다. 그리고 스티븐이 꽃다발을 엄마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김여사, 즉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행복이를 꼭 안았습니다. 그 순간, 멀리 떨어진 타지에서도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환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여사와 행복이는 한동안 서로를 끌어안고 그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왔습니다. 2017년 작은 누나 식구들이 호주에 방문하고 6년 만에 서로 다시 만나지만 가족이랑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과 거리에도 불구하고 가족 간의 애정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김여사는 행복이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할머니가 너를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너도 보고 싶었니?"라고 물었습니다. 행복이는 할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너무 보고 싶었어요, 할머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만, 서로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가족의 사랑은 영원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싱글이 아닌 제대로 된 가족들과 함께 사는 의미를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나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여러 번의 고민과 충돌을 겪었습니다. 사회에서 받는 시선과 인식, 그리고 나 스스로의 감정들 사이에서 자주 헤맸습니다. 게다가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그런 문화 및 가치관 안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더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가족과의 관계는 항상 가장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부모님의 기대 사이에서, 어떻게 제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의 이해와 수용을 받을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아들 행복이의 존재를 통해 가족 사랑의 깊이와 진정성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행복이가 저에게 보여준 무한한 사랑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엄마, 김여사의 따스한 포옹 속에서 그 사랑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엄마는 제 성 정체성을 완전히 이해한다기보다는 그냥 저를 사랑하고 수용해 주시기를 선택하셨고, 행복이도 따뜻하게 앉아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제 가족 역시 저를 그대로의 나로 받아들이며 변함없이 사랑해 주었습니다. 이런 순간들은 제게 주어진 소중한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기적은 없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이런 날이 왔으니 저는 세상에서 게이로 태어나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생은 예상치 못한 일들로 가득하고, 그 안에서 가족의 사랑은 항상 변함없는 지탱이 됩니다. 가족은 저의 모든 상황과 감정을 수용하며, 항상 곁에서 함께해 줍니다. 이러한 순간들은 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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