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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레트 Sep 15. 2022

[바다] 듣기 싫은 말 대신 들어야 할 말

빌드업이자 전초전

생각보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말을 던진다. 그런 말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모르니까 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 말이 얼마나 아픈지 모르니까,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 얼마나 무섭게 괴롭히는지, 겪어본 사람의 입은 무거워진다. 정말 쓸데없는 말을 해대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를 사랑하고 생각해서 말을 건네는 사람들도 있다. 그걸 구별 못하는 건 아니다. 말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아파서 그렇다는 걸 알고 있다. 바람이 스쳐도 상처가 따가운데, 멀쩡한 부위 없는 마음에 무엇이 와닿을까. 용기와 솔직함을 가져본 날, SNS에 글을 남긴다.      


지금은 어떠한 말로도 위로받을 수 없어요.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아무 말 안 해도 괜찮아요. 걱정된다면 그냥 옆에 앉아 있어 주고 손잡아주고 한 번 더 안아주세요.      


생각이 복잡해질 때는 철썩이며 부딪히는 파도 소리를 듣는다. 넘칠 듯 겁을 주다가도 되돌아가는 파도 모양,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파도를 맞는 돌을 바라본다. 파도가 돌에 맞는 건지, 돌이 파도를 맞는 건지. 이기거나 지는 형태가 없나, 돌도 파도에 맞아 모양이 깎이질 않나. 파도도 시간에 따라 다가왔다가 멀어지지 않나. 파도 하나로 인생의 이치까지 연결하는 건 너무 깊이 생각했다 싶어 숨을 깊게 쉬고, 수평선으로 시선을 옮긴다. 이전에 살던 곳에서도 바다가 바로 앞이었지만, 바다를 오래 보고 있지 못했다. 제주는 바쁘게 살려고 노력해도 시간이 생긴다. 안개로 희미한 경계선들 속에서 수평선이 무엇일까 찾아볼, 빛에 따라 바뀌는 바다색의 채도를 구별해볼 시간이 있다.

무의미한 듯 흘러가는 시간을 가만히 두면 진짜 마음이 뭔지 구별되기도 하고, 어떤 결심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 무관심한 상태를 바란 것은 아니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옆에 앉아 들어줬으면, 그때까지는 기다려줬으면 한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 유명 연예인의 말을 따라 해 본다. 아프게 했던 말들을 하나씩 나열해 쓰고 싶지만, 의미가 없다. 메모에 ‘어떤 형태든 힘든 일을 겪는 사람에게 하지 않아야 할 말’이라고 남겨둔다. 듣기 싫은 말 대신, 들어야 하는 말에 대해 기록해본다.

곽지해수욕장


장례식장 내내 웃음을 주는 역할을 하던 아이(A)에게 “어려서 아직 뭘 모르는구나. 다행이야.”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A가 혼자 방에 들어가 울고 나오는 일, 금쪽 프로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불안해하는 일, 아직 배우지 않은 한글을 물어 동생에게 편지를 써 부의함에 넣는 일-아이는 손님들이 찾아와 부의함에 봉투를 넣고 인사를 하니, 할머니와 동생에게 전달되는 매개체라 생각했다. 장례식 내내 과자, 반지, 편지를 넣어 보냈다.-을 설명하며 아이도 굉장히 슬프고 힘들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밝게 보이려 하는 노력은 어른들의 감정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라고. 모두가 슬퍼하기에 아직 감정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는 슬퍼도 웃음을 보이려 한다고. 아이가 자신의 바른 감정을 배워가려면 어른이 웃어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는 ‘금쪽이’를 열심히 보고 육아서를 몇 권씩 읽은 사람이니까, 성숙한 엄마인 것처럼 굴었다. 아이가 불안의 극치를 달려서 주변에서 ‘이대로 괜찮아? 상담이라도 받아봐야 하는 거 아냐?’라고 해도 배운 대로 “그랬구나”를 시전 했다. 물론, 이후에 상담과 놀이치료도 다녔다.     

“A야. 불안해? A가 불안하구나. 괜찮아.”

누군가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는 일은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부족할 때가 있다. 그 누구보다 우리 아이를 사랑하지만 어떤 말을 듣고 싶은 건지 알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하는 것처럼, 아이에게 필요하지 않은 말만 한 건 아닐까.

장례식 당시 어른들은 모두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내가 출근을 안 했더라면.’ ‘영상통화를 더 오래 했더라면.’ 사고가 있던 날, 나는 학원 강사로 출근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두 번 만난 원장 선생님께서 ‘천천히 출근하라고 했더라면.’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 면을 잘 아는 상담가는 세 가지를 하지 말라고 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랬다면, 저랬다면’, ‘누구의 잘못인가.’ 그 조언을 듣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세 가지 모두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했다. 하지만 7살 아이도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A가 너무 힘들어해서, 온전히 아이를 위해 상담가로 유명한 박사님을 찾아갔다. 초반부터 아이의 아픔에 집중했기에, 가족 상담이라 해도 온통 아이의 마음에 관해서만 질문했다. 그중에 큰 배움이 바로 아이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아이가 밤마다 왜 S가 죽었는지 그때 상황이 어땠는지 자세하게 물었는데, 말해줘도 괜찮은 부분은 이야기하고,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될 것 같은 부분은 얼버무렸다. 아이에게 사건에 대해 사실대로 말해도 될지 질문했다. 박사님의 답은 이랬다.      


어른들도 죄책감에 괴로운데, 아이라고 다를까요? 아이도 똑같아요.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엄마가 우는 게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심지어 이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생각해요. 다음부터 아이가 물으면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세요.

이후 아이는  질문했고, 지체하지 않고 “A.  때문이 아니야.”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그럼 운전한 사람 잘못이야?”라고 물었다. 주춤했다. 운전한 사람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다. 평생 소중한 가족을 빼앗은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세상이 가득 차게   없다. “사고였어. 우리가    없이 일어난 사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말이 끝나자 아이가 나에게 안겼다.      


사랑하는 A야. 너는 그 말이 필요했구나. 엄마가 요즘 화도 많이 내고, 아빠랑 자주 싸우는데 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 아빠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우리 A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해 미안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또 화내서 미안해.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넌 엄마의 기분과 별개로 울거나 웃을 수 있는 또 다른 인격체이자 소중한 존재란다. 그러니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자. 네가 충분히 울고 웃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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