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레트 Sep 10. 2022

두려움: 죽음, 이별, 재회

마주하기 힘든 감정(2)

하루에 10번씩 "엄마 죽으면 안 돼."를 말하는 아이 덕분에 '살아야 한다'는 명령어를 주입한다. 아이는 “사고가 나지 않게 부탁해요.”라는 말을 자주 하고, 유치원에서 쓴 소원 카드에도 이렇게 쓰여있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게 해 주세요.'  

일주일에 4번은 2시간 정도의 수면을 하고, 자다가도 여러 번 깬다. 불면으로 인해 예민해지고 부스럭거리는 작은 소리도 잘 들린다. 아토피가 심해지고, 소화도 잘 안된다. 심장이 자주 아파서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 조영술까지 하며 건강검진을 했다. 갑상선에 작은 물혹 말고는 걱정할 것이 없는데도, 검사가 잘못된 건 아닌지 의사가 놓친 것은 없는지 의심한다. 육지에서 갑상선 치료로 유명하다는 병원에서 물혹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서야 '내 심장이 이상이 없구나.' 깨닫는다. 신기하게도 밤이 되면 검사한 사실을 잊고,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가빠진다. 숨을 쉬기가 힘들어 심호흡을 여러 번 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이대로 죽을까 봐 잠이 안 온다. 아이가 혼자 남겨질까 괴롭다. 그렇게 또 밤을 새운다.

어떤 분이 아이를 보내고 공황이 와서 약을 먹었는데, 내 상태가 자신과 비슷하다고 하셨다. 나는 미루지 않고 정신과에 가서 약을 받는다. 건강하게 100살까지 살기로 아이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매일 항우울제와 공황장애 치료 약을 먹으며 때로는 멍해지고,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가장 좋은 점은, 약을 먹은 뒤로는 잠을 잘 자는 날이 많다.

죽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고, 남겨진 사람이 견뎌야 하는 괴로움을 알기에 이기적이지만 죽음보다 첫째와의 이별이 두렵다. 아이가 코로나로 고열이 날 때, 응급실을 가지 못했다. 응급실 한구석에서 둘째를 보냈기 때문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첫째 아이가 자동차 근처에만 가도 기겁하고 인도를 걷고 있을 때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몇 번이고 잠에서 깨면 아이를 만진다. 차가워진 살결을 빠르게 만지며 아이를 깨운다. 잠에서 깬 아이가 당황해하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미안해. 다시 자자."라고 말한다. 이전에도 아이들과의 이별은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상상도 하지 않은 일을 겪으면, 공포와 두려움보다 큰 존재가 된다. 죽을 때까지 이 불안을 놓지 못할 것 같다.

첫째 아이와 나의 일생을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이별을 모르는 사람처럼, 함께하는 시간이 마냥 즐거운 가족이 되고 싶다. 첫째는 건강하고 따뜻하게 살다가 인간의 평균수명을 채우고, 순리대로 부모를 보내고, 편안하게 가길. 절대 그 순간이 갑자기, 또,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으로 찾아오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이전에는 천국이 있다고 믿었다. 아이를 보내고 사후세계가 무(無)일까 두렵다. 아이와 다시 만나지 못할까 무섭다. 다시 만나서, 안고, '엄마'라고 부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까 봐. 천사처럼 예쁜 그 미소를 볼 수 없을까 봐. 품에 꼭 안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줄 수 없을까 봐.

오두막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가족 여행 중 사랑하는 막내딸을 잃고 살아가던 어느 날, 파파로부터 오두막(이미 세상을 떠난 딸을 찾은 장소)에 오라는 편지를 받는다. 오두막에 도착한 주인공은 세 사람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신의 마음에 대해 알아가고, 천국에 있는 아이 모습을 보게 된다.

그동안 알던 신과 악에 대한 개념 그대로의 영화를 보면서 너무 힘들었다. 알고 믿어왔던 것에 대한 혼돈과 분노와 답답함으로 덮여 미칠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영화 속 주인공이 부러웠다. 아이가 천국에서 웃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부러운 순간에도 신에게 섭섭했다. '나에게도 보여달라'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파괴된 우주를 인정하기로 한다. 혹시 누군가에게 믿음에 대한 평가나 비난을 받더라도, 살아온 시간이 부정당하는 허무함이 들지만, 외롭고 두렵지만, 지금은 내가 나를 용납해주기로 한다.    

  

그동안 믿어왔던 것은 모르겠고. 이미 잃어버린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없다면, 나에게 그것만큼 큰 벌은 없다. 제주에 가는 곳마다 하늘이 가깝게 느껴지고 아름다워서인지. 때로는 파란 하늘에 구름 사이로 비친 햇빛이 아이가 보내는 신호 같아서인지 나도 모르게 하늘만 보면 아이를 생각한다. ‘아이는 하늘에서 아픈 곳 없이, 웃으며 놀고 있었으면.’     

Oh, tell me it’s true, oh
Please just tell me you're alright
Are you way up in the sky
Laughing, smiling, looking down
Saying, "one day we'll meet in the clouds"
Up in the clouds

-Before you exist: Clouds     

하늘을 보면서 노래를 듣는다. 두려움은 언제나 찾아오지만 절대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을 이길 수 없다. 그러니 외친다. ‘아이야.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이전 07화 분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