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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레트 Sep 07. 2022

분노

마주하기 힘든 감정 (1)


어머니와 아이는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은 차량에 의해 하늘나라로 갔다. 두 사람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많은 사람이 가해자를 향해 화를 내고 욕했다. 각자가 믿는 신을 향해서도 분노를 표현했다. 당시 나는 가해자를 향해서도, 그동안 믿어왔던 신에게도 화를 내지 못했다. 지금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그 분노를 감당하지 못해 다 쏟아내지 못한다. 분노에게 잡아 먹히기 싫어서, 커지기 전에 밟아 쑤셔 넣는다.     


캠핑카 사건 이후, 남편은 양심에 걸린다며 캠핑카와 부딪힌 가게 지붕 물받이를 배상해주기 위해 찾아갔다. 사장님은 물받이가 손상되었는지도 몰랐다며 30만 원만 달라고 하셨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찌그러진 물받이는 그대로다. 우리가 호구라서, 남편이 양심적이라서 거기까지는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다음날 등원하는 도중에 앞서가던 레커차가 갑자기 멈추었다. 우리도 따라 정지했는데, 갑자기 차가 후진하며 우리 차를 박았다. 큰 충돌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함께 있었기에 걱정이 되었다. 남편은 밖에서 운전자와 이야기하더니, 5만 원을 받고 돌아왔다. 너무 화가 났다. ‘아이가 갑자기 후유증으로 아프면 어쩌려고?’ ‘왜 우리 잘못은 넘치게 배상해주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이해해주고 넘어가는 거야?’


캠핑카나 작은 접촉사고 때문이 아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 같은 남편 때문도 아니다. 어머니와 아이를 빼앗아 간 사고에 대한 분노였다. 어째서 착하고 양심적인 남편이 이런 일을 당한 건지, 왜 우리가 이런 힘든 일을 겪어야 하는지. 내가 믿던 신에게도 화를 냈다. “분명 지켜주신다면서요, 함께 하신다면서요. 살아계시면 대답 좀 해보세요.”              


매번 봉안당에 가족들과 함께 가다가, 첫째가 너무 힘들어해서 혼자 찾아간 적이 있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는 조금 흐르던 눈물이 혼자 가는 순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흘렀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가해자를 향해서 화가 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욕과 저주를 다 퍼부었다. 몸이 떨리고 숨이 가빠왔다. 처음 느껴보는 격렬한 분노였다. 역시나 분노는 나를 삼키고, 분노가 내가 되어 어딘가를 향해 때리는 손도 소리치는 목도 뒤늦게 아프다.        


안타깝게도  후로 분노는 남편과 아이를 향한다. 남편과 아이 , 모두가 세세히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짜증과 화를 서로에게 쏟는다. 밤이 되면 괜한 화풀이 했다며 미안해하지만, 다음날이면 소용없는 후회다.  번은 길가에서  손을 뿌리친 아이에게  자신도 놀랄 만큼 크게 화를 냈다. “위험하다고 했지! 손잡으라고 했지!”   돌리고 나니   트라우마다. 자동차가 다가오기만 해도 겁나고, 구급차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과 같은 현상. 트라우마가 분노로 표현된 순간이었다. 트라우마든 아무 이유가 없든 분노의 대상이 가족은 아니어야 한다. 여전히  안되기에 새겨 본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마음 때문에,  다른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되는 말로 후회를 남기지 말자.’       


상담교사인 시누이는 배우자에게 분노를 표현하지 않기 위해 감정 노트를 쓴다. 노트를 쓰레기통이라 부르며 하고 싶은 말이나 욕도 기록한다. 나 역시 최근 글을 쓰면서 마음이 가라앉고, 가족을 덜 아프게 하는 것을 경험했다. 하지만 검은 마음을 바라보는 하나의 모양일 뿐, 각자가 분노를 해결하는 정답은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빠에게 아무 이유도 없이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이는 내 모습을 따라 하는 게 아닐까? 평소 내가 남편에게 저렇게 짜증을 냈던가?’ 사이 회복을 위해 집을 나선다. 여행 콘셉트를 정해보자면 수학여행 필수코스. 행복한 여행객들처럼 보이는 갑옷으로 무장하고 산굼부리를 들린다. 마음은 전쟁 중인데, 하늘은 푸르고 햇볕도 따스하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풍경이 넓게 펼쳐진다. 힘들지 않게 정상에 오른 듯한 쾌감이 들고, 이내 사이좋은 가족처럼 가위바위보를 하며 계단을 오르내린다.


분위기 좋으니 운전대를 표선으로 향해 본다. 바닷가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이지만, 콘셉트에 맞게 맞은편 민속촌에 가보기로 한다. 오늘은 분노 대신 평화로운 날씨와 꽃, 바람을 느낀다. 그날 저녁 조금은 잠잠해진 마음으로 가족회의를 시작한다. “우리 요즘 서로 화를 많이 내잖아. 어떻게 하면 좋지?” 아이가 방법을 생각해낸다. 상대방이 주물러 주는 걸로 신호를 주면, 화가 난 사람은 신호를 받아 세 번 심호흡하고 “이렇게 말해서 화났어. 내 마음대로 안 돼서 화났어.”라고 이유를 말한다. 새끼손가락 걸며 “가족끼리 약속이야.”라고 한다. 지키지 못할 때가 많지만 회의 자체만으로 역사적인 순간이다. 우리는 분노를 해결하기보다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집중했다.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다. 내일은 소중한 사람이 다치지 않게 표현할 수 있길. 안 되는 날은 그저 “요즘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어. 별일 아닌 걸로 짜증 내서 미안해.”라는 말을 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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