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캠핑의 추억과 함께
어린이날이 다가와서 캠핑카를 렌트했다. 챙길 것이 있어 집으로 돌아가는 좁은 골목에서 캠핑카 옆쪽에 붙어있는 타프가 살짝 찌그러지고, 긁혔다. ‘타프만 100만원이라고 했었는데.. 덤터기 씌우는 거 아냐?’ 우리가 잘못했지만, 호구가 되진 않을까 겁이 났다. 역시나 자차보험을 했어도 캠핑카는 일반 자차밖에 안 된다. 단독 사고는 수리비 100만 원 이상 나오는 경우, 그 이상의 금액과 영업 손실액도 부담해야 한다. 설명이 길어졌는데, 미리 보험 든 우리가 왜 타프 금액을 넘어선 120만 원을 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싸울 힘이 없다. 수리비 영수증도 없이 수리비를 냈다. 우리는 아마도 호구가 된 것이 분명했다.
이미 2박을 예약했기에 우리는 캠핑을 이어가야 했다. 캠핑의 1도 모르는 캠린이에게는 모든 것이 어려웠다. 취사가 가능한 캠핑장을 찾아 돌아다녔다. 검색해서 가는 캠핑 공간마다 자리가 없었다. 그러는 중에 배가 고파서 짜증이 났다. 늦은 시간 캠핑장에 도착했고, 저녁을 먹으려 전기를 쓰자 차가 정전되었다. 분위기 내려고 화로도 샀었는데 불도 안 붙는다. “캠핑은 잘하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하나 봐.”라는 깨달음을 말하며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다.
하지만 날이 어두워지고 아이(A)가 주변 텐트 줄에 걸려 넘어져서 운다. 어렵게 불 붙인 화로 위에 올라간 닭꼬치가 다 탔다. 수저가 없어 쭈뼛쭈뼛 거리며 옆 텐트에서 빌린다. 고기는 다 식어서 돌 씹는 것 같고, 캠핑의 꽃이라는 마쉬멜로우는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다. 남편은 이제 절대 캠핑 안 하겠다고 짜증 낸다.
그 순간 나는 무슨 마음이었는지,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일이 안 풀릴수록 서로 위하자. 여보는 운전한다고 고생했고, A는 첫 캠핑이었는데 배고픈 거 잘 참고, 넘어져서 아픈데도 캠핑 좋다고 해서 고마워. 서로 ‘오늘 짜증 내서 미안해’하고 화해하자.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야.”
아마도 세상 사람들 다 기쁜 날 우리 가족은 슬픈데, 서로 미워하고 싸우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힘들어도 서로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조금 덜 슬프지 않을까 하는 성숙해 보이는 색깔을 빌린 것이다-내가 가진 색이라면 참 좋겠다. 지나고 보니 오히려, 이렇게 일이 안 풀려 정신없던 것이 다행이었다.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둘째가 보고 싶을 테니.
크리스마스에 이별해야 해서, ‘온 세상이 기쁜 날 우리는 앞으로 기뻐할 수 없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어린이날에는 자라난 아이를 볼 수 없어서, 어버이날에는 감사하다고 말할 어머니가 안 계셔서 괴롭다. 기쁜 날도 슬픈 날도 함께하지 못하니 소용이 없다.
6월은 아이가 태어난 달이라 많이 힘들다. 내가 낳은 아이가 내 품에 없는 것은 어떤 단어로도 설명이 안 되는 고통이다. 6월이 시작되고 계속 긴장 상태. 양해를 구해서 아이 생일 일주일 전부터 휴가를 냈다. 나도 절제가 되지 않을까 봐 겁이 나서, ‘하늘 아이’ 카페-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님들의 모임-지기분이 6월에 제주를 여행한다는 말을 듣고 만났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만나기 전 되려 상처를 주지 않을까, 더 불안해지진 않을까 생각이 복잡했지만, 만나자마자 따뜻하게 안아주셔서 ‘이 분과 이야기하는 시간은 괜찮겠다.’ 싶었다. 신기하게도 포옹은 차가운 마음을 데워준다.
지기분은 아이를 보낸 지 7년 정도 되셨다. 여전히 슬프지만 슬픔 중에 살아가는 법을 이제야 알겠다고 하셨다. “7년이라 그러면 너무 막막하죠?”라고 하셨다. 나는 오래 걸렸다는 분들을 만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나 천천히 가도 되겠구나. 1년이 지나서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는구나. 성숙해지지 않아도 괜찮구나.’
그리고 여전히 아이 생일과 기일이면, 절벽에 뛰어들 준비를 한다고. 만남 이후, 까짓 거 절벽에 뛰어내리자고 소리쳤다.
카페 분들이 댓글로 아이 생일을 축하해주셨다. 정작 나는 축하도 못해주고 있었네.. '생일은 기쁜 날이었지. 자랐다고 시끄럽게 축하해줘야 하는 날. 온 세상이 망한 듯 조용히 울어야 하네.'
8월은 어머니 환갑이다. 친정 엄마와 두 분이서 제주도 여행 가는 것을 환갑 선물로 받겠다고 하셨는데…. 그래서인지 친정 엄마는 올해 생일을 챙기지 않았다. 어머니 생신 선물로 편지를 쓴다. 편지를 쓰다 보니 죄송한 일들 투성이다.
둘째 낳고 어머니가 몸조리를 도와주셨다. 내 친구들은 시어머니랑 같이 지내면서 회복이 되냐 묻고, 어머니 친구들은 오란다고 진짜 가냐고 그랬다. 우리 둘은 특별한 사이라며 웃었다. 애 낳고 예민하게 굴 때도 어머니는 늘 내 걱정, 애들 걱정이셨다. 장례식장에서 어머니 친구분들을 만났는데, 어머니가 며느리 자랑 엄청했다는 말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잘난 거 없고, 해드린 거 없이 늘 받기만 했는데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가 자주 보고 싶다. 아이가 생각날 때면 어머니께 전화해서 ‘너무 힘들다’고 말하고 싶다. 어머니를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어머니 생신날, 사부인께서 담아온 간장게장과 김치를 보고 울어야만 했다.
시간이 흐르는 게 무섭다. 12월이 한참 남았는데도, 12월이 다가오는 게 너무 두렵다. 시간이 흐르고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급해진다. 성숙이나 회복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마냥 함께 기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