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망각이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괴로울까. 첫째를 낳고 기르면서 “이렇게 힘든데, 둘째는 절대 없어.”라고 했지만 힘들었던 감정들을 망각했다. 망각하지 못하고 완벽하게 기억한다면, 정말 괴로울 것이다. ‘특히 낳는 순간을 망각해서 참 다행이야.’라고 자주 말한다. 도깨비라는 드라마에서 저승사자가 이승의 기억을 망각하는 차를 대접하며 “망각 또한 신의 배려입니다.”라고 한다. 망각은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할 만큼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존재이다.
원치 않는 기억을 억누르게 하는 실험에서 강한 트라우마 경험을 한 사람들이 더 자발적 망각을 일으키는 것을 발견했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망각해야만 한다.
망각은 나에게 도피기제다. 진짜 망각했는지, 그런 척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매 순간 기억하고 깊이 생각하면 숨쉬기 힘들다고 판단했기에, 내 몸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망각한다. 망각이 잘 일어나려면 열심히 일해야 하고, 사람도 부지런히 만나야 한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이며 살아낸다.
탑동 광장은 집과 가깝고 아이가 좋아해서 자주 가는 곳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보이는 노을 지는 모습이 아름답고, 저녁이면 시원한 공기가 느껴진다. 사람들은 길 가 계단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버스킹을 듣기도 한다. 광장이 꽤 넓어 가족·친구끼리 나와서 농구, 족구를 하고 킥보드와 자전거, 보드를 타는 아이들이 많다. 하루는 놀고 있는 아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두 돌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의자가 달린 킥보드를 타고 지나갔다.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를 보면서 무수히 참았던 순간들이 무너졌다. 내가 슬퍼하면, 첫째도 힘들어지기 때문에, 당장 펑펑 울지 않는다. 마음이 무너졌지만, 눈물은 꼭 잠그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가 잠들고, 그동안 열어보지 못한 사진첩을 열어본다. 저장된 파일 속 제일 최근 영상은 둘째가 언니 킥보드를 타고 싶다고 우는 영상이었다. 영상 속에 내가 말한다. “이건 언니 거야. 언니가 빌려준다고 하면 타자.” 나는 질투심을 느낄 첫째 마음이 늘 먼저였다. 아직도 제일 걸리는 부분이다. 영상 속 둘째가 운다.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 아니 도려내어 사라지고, 미어지다 못해 불타고 재가 되어 버린다. 그것도 아니, 글로 제한할 수 없는 마음이다. 그 영상을 찍은 날, 둘째 크리스마스 선물로 의자가 달린 킥보드를 주문했다. 배송은 받았지만, 둘째는 한 번도 킥보드를 타보지 못했다. 망각하고 싶었던 사실을 마주한 이후, 나는 의자 달린 키보드를 쳐다보지도, 사진첩을 열어보지도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눈의 기능이 고장 나(어쩌면 제 기능을 하는 걸지도) 글씨가 흐리게 보이지만, 꾸역꾸역 글을 쓴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다.
“S야. 엄마 까먹은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고 엄마 미워하면 안 돼. 착한 S가 엄마 좀 이해해주라. 도저히 살 수 없어서 그래. 엄마가 살아가려면 모르는 척밖에 방법이 없어. 근데 엄마 좀 이기적이다. 나는 살겠다고 그치. 미안해.”
상실의 첫 번째 단계라는 부인. ‘더 이상 부인할 수만은 없다.’ 싶다가도 인정하는 마음에 다가가면 무너진다. 감당이 안 되니 뒷걸음질 친다. 시간이 흘러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몇 번이고 꿈이었으면, 되돌아갔으면 하는 꿈같은 꿈만 꾼다. 오늘은 망각의 힘이 센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연기한다. 부인을 안 하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내 글은 실패한 상태에서 쓰는 글이다. 탑동 광장에서 현실을 마주하고 5개월이 흐른 지금 더 많이 부인한다. 태풍이 너무 크다는 핑계로. 첫째 아이가 제일 먼저라는 이유로.
탑동 광장을 다시 걸어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이 글을 쓰는 순간이 잠시나마 사실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니 애써 부인하고 있는 검은 마음에게 더 이상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에요.”라는 말은 하지 않는 걸로. “웃으며 사는 거 대단하다.”는 말도. 진심이 담기지 않은 “어떻게 살아. 나 같으면 못살아.”라는 말도 넣어줬으면 한다. 사실은 나를 둘러싼 온 우주가 흔들리고, 무너져 내린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살아야 해서 사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