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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레트 Sep 19. 2022

죄책감

가장 무거운 마음

검은 마음은 모두 무명(빛이 없음)의 검은색이다. 이미 명도가 0이기에 마이너스 값을 매길 수 없지만, 그 아래에서도 더 깊은 색을 내는 것들이 존재한다. 0에 가까운 검은색을 먼저 쓰게 된다. 무게에 따라 마음들이 쌓여있다면, 위에 있는 것들부터 꺼낸다. 물감은 사라지지 않고 캔버스에 남는다. 오히려 더 명확해져서 깊어지기도 하고,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그림이 된다. 그래서 이 마음에 대해서 글쓰기를 미루고 싶다. 엉킨 쇠사슬 그대로 두고 싶다. 다가가면 내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가 돌덩이로 변해 한꺼번에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다. 상처로 가득 찬 마음이 곪아 터지고 실체가 없는 마음이 고통스럽게 아프다. 쓰기 싫다. 바로 앞 문장을 쓰고 몇 주가 흘렀지만, 여전히 쓰기 싫다.     

장례식장에서 많은 사람이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고백했지만 나는 쳐다보지 못했다. 쳐다보면 살 수 없었다. 그러다가 함께 쓰는 모임에서 편지 공모전을 알게 되었다. 주제는 ‘선물 같은 편지’. 어머니께 편지를 쓰고 싶었다. 어머니가 꿈에 한 번도 나오지 않으셨는데, 문득 ‘나에게 미안해서 그러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미안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머니 잘못 아니에요. 저 어머니 안 미워해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도 피하던 죄책감이 보였다. 잠시 바라봤지만, 죄책감이라는 건 보고 싶은 마음보다 훨씬 더 괴롭고, 무겁고, 아프고, 버거워서 '함부로 꺼내지 말자.'로 마무리한다. 이 무거움을 그리려고 빌드업이자 전초전을 먼저 썼는데, 나에게 말해주지 못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말일지 몰라도, 당장 나에게는 소용없는 말처럼 느껴진다.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토스트가 맛있다. 직접 만들어서 어머니와 S에게 먹이고 싶다. 어머니 방법대로 토스트를 굽고, 칭찬도 듣고, 맛있게 먹으며 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한다. S가 처음으로 “하부지, 하부지”라고 말한다. 우리는 S가 똑똑하고, 말도 빠르다며 좋아한다.

출근해야 하는데, S의 앞 머리카락이 길어 보인다. 언니 카시트에 앉아있는 S의 앞 머리카락을 자른다. 귀찮다고 피하는 바람에 모양이 조금 삐뚤삐뚤하다. 어머니께서 “싫어하니까 그만해.”라고 하신다. 조금만 더 손질하면 좋겠다는 욕심에 한 번 더 자른다. 다행으로 모양이 가지런해진다. 머리카락을 손질하는 바람에 출근 시간이 조금 늦었다. S도 낮잠 시간이 되어 졸려 보인다. “어머니 오늘도 산책하러 나가세요?” “응, 어제도 산책하러 나가니 좋아하더라.” ‘S가 졸려 보이니 멀리 가지 마시라.’ 간섭하고 싶어 졌지만 참는다. 아이를 맡기는 것도 죄송한데, 이래라저래라 하기 싫다. 어머니는 함께 지내는 동안 몇 번이나 ‘이 동네 차 조심해야겠더라.’ 하셨다. 오토바이들이 갑자기 튀어나온다며, S랑 다닐 때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네, 어머니. 그럴게요.”


나는 아마도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하고, 몇 번이고 더 되감기 하겠지. 어머니께 마지막으로 해드린 음식이, 아이와 함께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토스트구나. 그냥 출근할 걸, 머리카락 잘라준다는 생각을 왜 했을까. 괜히 시간을 끌었던 건 아닐까. 아이가 싫다고 했는데 그만할걸.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부족한 시간에 아이가 싫다고 하는데 왜 멈추지 못했을까. 어머니께 산책 어디로 가냐고 왜 묻지 않았을까. 낮잠 잘 시간이니까 멀리 가지 마시라고 간섭했어야 하는데. “어머니도 차 조심하세요.”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아니, 어머니가 차 조심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지. “어머니 멀리 가지 마세요. 그냥 집에서 S 재우고 쉬세요.” 아니, “어머니 제가 S 재우고 출근할게요.” 아니, “어머니, 저 돈 안 벌어도 괜찮아요. 학원 일 안 하기로 했어요.”      



아이의 사망선고를 듣고-그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만 계속했다. 혹시나 들을까 싶어, 쉬지 않고 ‘사랑해’라고 퍼부었다. 사실 어떤 정신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S야 사랑해.’ 그런데도 사랑한다는 말을 더 해줬어야 한다는 후회가 든다. 곁에 있으면서, 내 품에 안겨있는 시간이 더 많았는데도 더 많이 안아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첫째에게는 늘 미안하고 둘째는 그냥 예뻤다. ‘천사야.’라는 말을 많이 해줘서, 진짜 천사가 되어 버린 걸까 싶을 정도로. 예쁘고, 사랑스럽고, 착했다. 둘째 육아는 여유가 있었다. 둘이라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둘이라서 행복했다. 첫째와 사이가 별로이던 남편은 둘째 바보였다. 둘째만 보면 좋아하는 마음을 못 숨겨서, 나에게 늘 혼났다.

혼난 이유는 둘째를 낳기 전에 읽은 책 내용 때문이었다. 둘째의 마음에 관한 조언은 둘째가 조금 자란 뒤에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과감히 패스하고, 첫째의 마음에 관해서만 읽었다. ‘둘째가 크면 다시 읽어야지.’ 했다. 책에서 읽은 대로, 대부분 첫째 중심으로 육아했다. 동생이 생겨 큰 질투를 느낄 첫째의 눈치를 보고, 항상 첫째가 먼저였다. 그래서 둘째를 바라보는 남편의 사랑스러운 눈길을 나무랐다.

둘째가 우리와 함께할  있는 시간이 두 해가 채 되지 않는다는  알았다면.  사랑스러운 눈길을 나무라지 않았을 텐데. 잠들기 , ‘S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럽지? 진짜 천사가 따로 없어.’라고 둘이 나누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걸.  짧던 첫째와 달리 가리는  없이  먹던 둘째에게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줄걸.       




‘지나간 일,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이 후회라면 우리는 앞으로 만날 날들에서도 후회한다. 이 바다에 같이 놀러 와야 하는데, 아이가 좋아하던 캐릭터 테마파크에 가볼걸. 제주에 같이 왔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에 네가 있었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네가 따라 부르는 노래가 뭔지 알고 싶은데.

네가 뛰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웃고, 울고, 말하고, 먹고, 자고.

사춘기라고 문도 잠그고, 학교 가기 싫다고 땡땡이도 치고, 친구도 사귀고, 엄마에게 상담도 하고, 졸업사진도 찍고, 교복도 입고.

오늘은 반찬이 맛없다며 투정도 부리고, 가끔 엄마랑 말다툼도 하고, 저녁엔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고.

함께 생일 축하하고, 예쁜 옷도 사 입고, 어느 날은 엄마 이제 늙었다는 말도 하고.


그렇게 너랑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네가 없다.     



무거운 죄책감과 사무치는 그리움 사이에 무엇이라 부르기 어려운 이 마음은 뒤섞이고 엉켜있다. 검은색에 검은색으로 칠해도 완벽히 칠해지지 않는다.


10년을 칠한 들, 이 마음이 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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