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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레트 Oct 01. 2022

모든 마음을 그리움이라 부르다 Ⅱ

검은 마음 마지막


구겨봤자 여전히 거짓말을 할 테고, 추구하던 가치와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느끼고, 비교에서 오는 불안과 불행이 있다. 제주가 이제는 좋지만, 여유가 넘치는 곳에서 바쁘게 살려고 하고, 회복에 집착하지만 자주 회피하고 도망친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되어 외로움을 느끼고, 망각한 것처럼 연기하면서 한편으로 행복할 수 없는 현실에 억울하고, 분노하며, 두려움도 느낀다. 기저에 있는 죄책감을 발견한 날에는 벗어나기 힘든 순간을 경험한다.


쓰면서 가벼워지기도 하고 더 깊어지기도 한 이야기들을 지금부터 모두 '그리움'이라 부른다. 그리움의 대상이 없을 때는 바라보지 못했던, 그리움이 있기에 생긴 마음이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시부모님이 계셔서 좋았다. 잔소리는 한 문장도 하지 않고, 며느리와 사위의 장점만 봐주시는 어머니가 존경스러웠다. 어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잘하시고, 아는 사람을 다 챙겨야 하는 동네 대장이셨던 어머니는 존재감으로 치자면 최고였다. 내가 의지했고, 존경했던 존재가 이제는 없다.


엄마들은 대부분 아이와 육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아이가 얼마나 자랐고, 뭘 잘하고, 어떤 부분이 달라졌으며, 어디가 아프고, 어떻게 하면 잘 먹을지, 바르게 교육하고 있는 건지, 걱정이나 불안 요소, 오늘의 의상 등등을 시시콜콜 이야기한다.

그런데 왜 S 이야기는 하면 안 되는 걸까? 반갑지 않은 이야기라서? 생각나면 이야기하고, 기억하는 모습을 다시 또 기억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건가? 왜 숨겨야 하지? 왜 가슴에 묻어야 하지? 평생 볼 수 없어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아이를, 그 누구와도 편하게 말할 수 없다. 남편이 더 힘들까 봐 이야기를 꺼낼 수 없고, 모임의 분위기가 싸해질까 봐 함부로 시작할 수 없다. 아이가 얼마나 예뻤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보고 싶은지,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말할 수 없어서 기억에서 자꾸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러면 또 엄마는 죄책감을 느낀다. 아이를 지키지도 못했는데, 기억에서 사라지게 한다고? 엄마 맞아?


그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져야 정상 아닌가. 5년 뒤, 10년 뒤에는 그리움이 덜어질까. 10년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옆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리움을 그릴 수 있어야지. ‘-없다’라는 변명은 그만하고, ‘-까봐’로 끝나는 걱정은 하지 말아야지. ‘사실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해보지 않았잖아. 줄넘기 하나를 넘어보고 빨리 뛰는 연습을 해야지, 바로 빨리 뛰려고 하면 되나.’ 오늘도 천천히,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다짐만 한다. ‘그래도 다짐하는 게 어디야.’라고 위로하면서.     


그리움은 구기지 말고 그대로 두자. 제발.      

 


어디를 가든 그리움을 그릴 수 있지만, 장소마다 접근법이나 매무새가 달라진다. 시댁 근처에 가면 어머니 생각이 더 많이 난다. 전에 살던 곳 근처로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뛰면서 뭘 보고 있는 건지 생각을 멈추고, 풍경을 눈에 담지 않는다. 남편은 생애 처음 제주에 왔고, 나 또한 대부분 처음이라 다소 무겁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장소와 상관없이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대게 그 현상을 피하기 때문에 제주의 아름다움이 보이고 감탄도 가능하다.

     

그런데 제주에서 ‘언제쯤 다시 갈 수 있을까?’ ‘혼자 가면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장소들이 있다. 작년 여름 어머니와 시누이, 딸 둘과 함께 제주-콘셉트가 여자들끼리 가는 여행-에 왔었는데, 그때 함께한 장소들이 그렇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신났고,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드라이브하다 멈춰서 사진을 찍어도 인생 샷이었다. 모기들이 기승이라 어머니가 고생했던 기억이 나지만, 사람이 붐비지 않아 여유로웠다.

“하늘이 참 예쁘다, 그렇지? 우리가 여행하는 거 하늘이 아나 봐.”

하늘을 보며 감탄하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S는 내가 볼게. 너는 좀 쉬어라. 이렇게라도 쉬지 언제 쉬겠니.”

어떻게 본인은 쉬지 않고 늘 나를 먼저 생각해주실 수 있으셨을까. 또 어머니께 죄송하다.

“엄마, 엄마.”

할 줄 아는 말 중에 ‘엄마’가 제일 많았던 S가 숙소에서 언니를 보고 웃는 영상을 꺽꺽거리며 넘어갈 듯 울면서 본다.


얼마 전, 여행 중 갔던 식당에 다시 갔을 때 첫째가 할머니, 동생과 함께 왔다고 기억해서 깜짝 놀랐다. 아마도 아이에게 행복했던 기억이라 오래가는 거겠지. 여행은 행복했지만, 지금은 아픈 기억이다. 행복한 기억으로 남으면 좋으련만. 너무 아프다. 더 이상 볼 수 없고, 함께할 수 없는 그리움은 너무 가슴이 미어진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눈을 맞추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안아볼 수 있다면, 딱 한 번만이라도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전할 수 있다면, 잘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상 눈에는 실체를 담을  없고 사랑한다고 말해줄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보고 싶은 누군가를 마음에 담아야 하는 사실은 굉장히 아프고 억울하고 화나고 처절해지지만,  해야만 한다. 마음에서만 그들을 살게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미 가득히 그들이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 마음에서는 평생 살게 하자. 건강하고 행복하게, 웃으면서 살게 하자. 짧은 인생을 분과 초 단위로 나누어 오래오래 그리워하자. 그리움에 대해 들어주고 싶어 하는 따뜻한 사람들에게 잠시만 신세 지자. 말하기를 망설이지 말고, 외면할까 겁내지 말자. ‘아직도’라는 말을 쓰면서 그만하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지나 더 깊어진 그리움을 당당히 내보이자. 그리움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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