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은 양쪽의 말을 들어봐야 합니다.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었다. 남편의 사정도 이해가 되었기에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해주었다. 대신 제주에 오면, 본인이 살림을 한다고 했다. 평소에도 정리는 거의 남편 몫이었고, 요리만 빼면 남편이 더 잘할 것이다. 역시나 남편은 식사 후 바로 설거지한다. 정리라고 말하면서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우는 행위이지만, 그것조차 엄청난 노력으로 해야 하는 나보다는 훨씬 살림을 잘 산다.
그런데 그 외에 대부분 남편은 핸드폰을 붙들고 있다. 귀에 에어팟을 끼고 가족과의 대화는 단절시킨 채, 운동 경기와 드라마, 영화, 예능, 뉴스 모든 채널을 다 섭렵한다. 영상매체를 보는 것 자체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부 사이에 한쪽이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보는 모습을 보면서 사랑스러워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남편의 특기는 내가 한 일을 인정해주지 않고, 트집 잡는 것이다. 집안일로 잔소리를 시작하고, 이어서 “내가 안 하면 집이 엉망이야. 괜찮을 때 좀 움직여.”라고 특기가 조금만 발휘되어도 나는 욱하고 만다. 화내면서도 남편에게 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남편이 늘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돈 벌지 않고, 일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면을 공격하고 싶지 않다. 대신 “여보는 핸드폰만 보고 있잖아.”라며 방어한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핸드폰을 보는 모습이 싫고, 짜증 나고 얄밉다.
내 나름대로 남편을 배려한다. 아이를 돌보는 일 대부분 맡아서 하고, 혼자서 장을 보거나 요리한다. 남편 혼자 시간을 보내라고 아이와 둘이 놀러 나가는 시간도 많다. 그런데 내 배려는 사자가 사랑하는 소에게 주는 고기와 같은지, 아니면 지금은 뭐든 부족하게 느껴지는지. 밤을 꼬박 새워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다음날 출근하는 나를 배웅하며 ‘이제 잘게.’라고 한다. 때로는 무기력하고 우울한 사람 같아 보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뭐가 그 마음을 힘들게 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영상을 왜 봐?”라고 물었더니, “안 보면 뭐 해?”라고 대답한다. 제주에 이사 와서 남편이 할 일을 찾기는 했다. 카페를 해볼까 하다가, 누군가의 소개로 레스토랑 알바를 하려다가, 요즘 쿠팡 플렉스 배달로 투잡을 뛰는 사람이 많다며 몇 번 배달을 다니기도 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구를 만나도 어색한 모습이다. 사람을 만나기가 힘든가 했는데, 누군가 ‘남자에게 일이란 정체성’이라는 말을 들었다. 정체성이 사라진 남편은 무슨 일을 해야 자기 모습을 회복할지, 사람을 만날 때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 모르는 듯하다. 그러면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시간 자체가 허전한 모양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시간이 흐르니까. 그 시간에는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가끔은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영화 속 멋진 친구가 되어보기도, 아무 생각 없이 예능 속 유머를 들으며 웃을 수도 있으니까. 현실의 내 모습이 어떠하든지 상관없다. 이렇게 남편을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착한 아내인 척 코스프레 한 느낌이라 찝찝하다.
(남편 입장에서 써보려고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대답의 십 분의 구가 ‘몰라’였다. 남편은 내 질문에도 자신의 마음을 회피한다. ‘내용 어때?’라고 최종 확인도 받았지만, 남편의 마음을 바라보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일상이 재미가 없고 지루하다. 유일한 낙이라면,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인데 돈을 쓰고 맛이 없으면 그날 하루가 실패한 느낌이다. 식당 갈 때마다 아내가 내 눈치를 보는 걸 알고 있지만, 기분이 나빠지면 숨기지 못한다. 아내는 이왕 온 김에 기분 좋게 먹으면 안 되겠냐고 짜증 낸다. 나도 그러고 싶지, 비싼 돈 썼는데 기분 좋게 먹고 싶지. 나라고 기분이 나빠지고 싶을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땐 행복하잖아. 근데 가끔 걱정된다. 이렇게 돈 쓰다가 빚만 남는 건 아닐까? 배달 음식은 물린다. 아내의 요리실력이 꽝인 건 아니지만, 메뉴에 고기가 없는 날은 별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실은 엄마가 해준 음식이 그립다. 김치, 삼계탕, 엄마가 해준 집밥을 먹고 싶다. 부엌에 서 있는 엄마 모습이 그립고, 지금 전화해도 엄마가 “아들!”하며 받을 것 같다.
아내에게 불만이 있다. 내 눈에는 보이고, 아내 눈에는 가려지는 것들이 있는데, 대게 집안이 어질러져 있는 현장에서 심해진다. 치우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 주저 없이 말한다. "이것 좀 치워. 제자리에 둬." 아내는 잔소리 그만하라고 한다. "말하기 전에 하면 되잖아." 투덜투덜하며 제자리에 두는 아내에게 또 주문한다. "그릇 좀 가져다줘." 안 시키면 안 할까 봐, 그때그때 안 치우면 쌓이니까 레스토랑 셰프처럼 주문하게 된다. 아내가 "예, 쉪!" 하면서 따라주면 좋겠지만, "하고 있잖아. 그만 좀 시켜. 그럼 하던 것도 하기 싫어."라며 사춘기 여자아이처럼 나온다. 하, 여자의 마음이란 어렵다.
설거지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들고, 에어팟을 낀다. 봤던 드라마를 또 본다. 뒤에 내용을 다 알지만 어울리는 음악이 들려오고, 맛깔나게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을 보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영상도 보고, 좋아하던 축구 경기도 본다. 핸드폰을 들고 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도 있고, 다음날 일이 없으니 밤늦게까지 볼 때도 있다. 시리즈물을 보는 날 특히 그렇다.
음식에 예민하게 구는 말, 집안일로 잔소리를 쉬지 않는 입, 온종일 대화 없이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 때문에 아내와 자주 싸운다. 아내는 말에 예민하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을 아주 철저하게 믿는 사람 같다. 별생각 없이 던진 말에 상처받고, 서운해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말이 심했나 싶어 먼저 사과한다. 그렇게 조그만 일들이 쌓였나 보다.
분명 펜션에서 일박하면서 가족끼리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다음날 해바라기를 보러 가면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평소와 다른 스케일이다. 지금은 싸움의 시발점, 이유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내에게 물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만큼 사소한 이유다. 우리는 그동안 쌓인 분노를 서로에게 터트리듯 말을 주고받았다.
해바라기 밭에 도착하자마자, 카드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 카드 못 봤어? 마지막에 정리할 때 안 챙겼어?" 나는 잔뜩 예민해졌다. 아내도 짜증이 한가득하다.
"자기 카드를 왜 나보고 챙기라고 해? 펜션에 전화해볼게, 주인 전화 올 때까지 해바라기 보고 있자."
"지금 꽃이 문제야? 다시 돌아가서 카드 찾아야지."
"20분 걸려서 이제 도착했는데 다시 간다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확인해보고 가."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하다가 둘 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아내가 아이와 해바라기 밭에 먼저 들어가길래, 혼자서 다시 펜션에 갔다. 아내에게 전화가 와서 펜션 주인이 찾아봤는데 카드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차에 없으니, 펜션에 있는 게 확실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카드를 찾는 일이 먼저인데, 아내는 혼자서 펜션으로 간 내 행동에 더 화가 난 모양이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커졌다. 또 서로를 생채기 내는 말을 주고받다가, 욕도 나왔다. 말에 예민한 아내와 싸울 때 욕은 금지다. 그런데 아내도 욕을 쓴다. "이럴 거면 혼자 살아.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거면 왜 같이 살아? 이혼해. 혼자 살라고. 진짜 이기적이야."
해바라기의 꽃말은 일편단심. 아내는 수많은 해바라기가 듣고 있는데 처음으로 이혼을 말했다. 하지만 아내라면, 화나서 던진 말일 것이다. 늘 아이를 신경 쓰던 아내가 요즘은 아이가 있어도 큰소리를 자주 낸다. 아이도 기억하고 있다. “엄마 아빠 해바라기 밭에서 전화로 엄청나게 크게 싸웠잖아.” 아이 앞에서 화낼 때 짜증 나긴 하지만, 이해되기도 한다.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아내를 따라 사과할 용기를 낸다. “화내고, 말 함부로 해서 미안해.”
사고가 있던 날, 아내가 출근하지 않고 엄마와 함께 산책하러 갔다면. 그래서 아내가 지금 내 곁에 없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아내가 가끔 '내가 괜히 일한다고 해서..'라는 말을 시작하면, "나는 여보랑 A가 없으면 못살아."라고 답한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내 마음을 다 모르겠고 알고 싶지 않아도, 두 가지만은 확실하다. 둘째와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는 것. 아내와 A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