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께.
어머니, 내일이면 어머니 생신이네요. 결혼하기 전에 예쁜 가정 만들어가겠다고 어머니께 편지 썼던 일이 기억나요. 올해 어머니 환갑 축하해드리려고 3년 전부터 꾸준히 저금했는데... 드릴 수 없네요. 결국엔 보낼 수 없겠지만,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봅니다. 어머니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더위를 많이 타셔서 겨울에도 반소매 티를 입으시던 어머니 생각이 나네요. 어머니가 좋아하는 복숭아가 참 맛있는 계절입니다. 올해 아버지 생신에는 제가 직접 어머니가 잘하시던 감자탕과 삼계탕을 끓여봤어요. 어머니도 같이 드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어머니가 해주신 맛있는 음식, 어머니께 감사한 일들, 무엇보다 어머니께 죄송한 것들이 자꾸만 생각나요.
첫 번째로 더 효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해요. 어머니 핸드폰을 열어보니, 저는 늘 어머니께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만 했더군요. 돈이 없어 힘들다, 애들 키우기 힘들다, 남편이 힘들게 한다. 집에서는 든든한 장녀 노릇을 한다고 힘들다는 말도 못 해요. 집안에 장녀로 태어나 동생 4명 키우다시피 하신 어머니가 제 마음 잘 이해해주셔서 그랬나 봐요. S가 사무치도록 보고 싶은 날이면 어머니께 전화하고 싶어요. "어머니, S가 너무 보고 싶은데 저 어떡해요? 어떻게 견디면서 살죠?" 그럼 어머니께서 금방 답할 것만 같아요.
저는 어머니를 많이 의지했던 것 같아요. S는 잘 있나요? S랑 같이 산책했다고 괜히 미안해하지는 마세요. 맹세코 한 번도 어머니 원망한 적 없어요. 그저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그러니 제 꿈에도 나와주세요.
두 번째는 그날 어머니 산책 어디로 가시냐고 꼭 묻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격리기간 동안 짜증도 많이 내고 그랬는데, 힘든 격리 끝났다고 우리 같이 하루 소풍 간 날이 마지막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격리기간 동안 같이 나눈 대화들,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 다 기억하고 싶어요. 사라져만 가는 기억과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요. 어머니께 김치 담그는 비법을 배워둘 걸 그랬어요, 매번 김장할 때 가지도 못하고…. 요즘 남편이 어머니 김치 먹고 싶다고 해요. 저는 어머니가 해주신 단호박 샐러드를 먹고 싶어요. 같이 격리할 때 어머니께 요리 배우던 순간들이 그리워요.
세 번째로 매일 돈 걱정하다가, 돈 벌겠다고 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일 나가서 죄송해요. 어머니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그 순간 얼마나 무서우셨을까요. 그러면서도 우리 아이, 얼마나 살리고 싶으셨을까요. 저는 어머니의 아픔을 조금도 몰라서 너무 슬퍼요. 어머니랑 S는 그렇게 아팠는데,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럴 때도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어요. 우리는 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너는 나한테 제일 좋은 며느리였다고 해주시면 좋겠어요. 꼭 나중에 다시 만나자고, 멀지만 꼭 만날 수 있다고 해주시면 좋겠어요. 어머니 한 번만 더 뵙고 안기고 싶네요. 저는 어머니 품이 참 따뜻했어요.
네 번째는 요즘 남편하고 너무 자주 싸워서 죄송해요. 어머니 속상하시죠? 저희도 너무 힘들어서 각자만 생각하는 이기심에 자꾸만 싸우게 되나 봐요. 가장 사랑하는 엄마와 딸을 한꺼번에 잃은 남편이 불쌍하면서도, 나도 의지할 데라고는 남편밖에 없는데 남편이 막무가내로 정신 못 차리고 있으면 답답하고 서운한가 봐요. 어머니 제가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지혜로운 아내와 품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길 응원해주세요.
저희,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결혼하기 전 편지 썼던 것처럼 예쁘게 서로 사랑하면서, 부모님께도 효도하고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겠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제 '행복'이라는 단어가 우리와 너무 멀게 느껴지네요. 그래도 예전에는 어머니께 숨길 수라도 있었는데, 이젠 숨기지도 못하네요. 어머니는 다 보고 계신 거죠? 어머니가 보고 계신다 생각하면 제 모습이 부끄럽네요.
이 편지가 하늘에 닿아 어머니가 읽어보시고 제 꿈에 나와서 답장 주시면 좋겠어요. “나랑 S는 잘 있어. 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러니 조금만 힘내렴. 부부가 앞으로도 서로 배려하고 위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거라. 나중에 때가 되면 다시 만나자.”
어머니는 맡으신 일도 많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셨어요. 장례식 때 저희 자녀들이 함께 느꼈고, 어머니가 하셨던 일들을 나누자고 다짐했어요. 남은 가족들 서로 사랑으로 아껴주고, 힘들 때마다 어머니 닮아가자고 다독여볼게요. 어머니 친구분들이 어머니가 며느리 자랑 엄청 많이 했다는 말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잘난 것 없고, 해드린 것 없는데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할 걸 그랬어요. 감사하다는 말도 지겨울 때까지 할 걸 그랬어요.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어요. 하늘에서 우리 S 잘 부탁드려요. 이렇게 또 부탁을 남기네요. 어머니의 며느리라서 행복했어요. 결혼해서 좋은 이유 첫 번째가 시댁이라서 감사했어요. 아버지께 남은 효도 할게요. 많이 사랑해요.
2022년 8월 26일 금요일.
어머니의 하나뿐인 며느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