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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레트 Sep 16. 2022

Prolog. 노란색 꽃을 든 가족

가족사진 다시 그리기

둘째 돌 사진을 바닷가에서 찍었다. 크림색의 옷을 맞춰 입고 아이에게 노란색 모자를 쓰게 했다.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직접 꽃다발을 준비했다. 아이의 첫 생일을 좋아하는 꽃과 함께 담고 싶었다. 사진사가 함께 온 어머니도 같이 찍어보자며, 꽃다발을 어머니께 건넸다. 가족사진 속 우리는 노란색 꽃을 들고 있고, 그중 두 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하루 일러스트

 

사람마다 애도의 방법이 다릅니다. 누군가는 하루도 견디기 힘들어하고, 누군가는 열심히 일합니다. 어떤 사람은 멀쩡히 지내다가  십 년 뒤에 터지곤 합니다. 그렇다고 슬픔의 크기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방법을 요구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들은 조언 중에 가장 공감되면서, 지키기 어려운 말이다. 우리는 두 명의 가족을 함께 잃고, 각자 다른 애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애도와 상실에 대해 적힌 글을 읽어봐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만, 사람마다 다른 모양으로 살아갔다. 누군가는 먹는 것조차 힘들고, 다른 이는 함께 지내는 가족을 위해 애쓰고, 어떤 이는 일을 열심히 하며, 혹은 상실한 이를 미워하며 기억을 조작하기도 한다. 애도의 방법이 다르다는 걸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함께 살아가는 가족은 각자의 다른 애도 방법을 존중하기가 힘들다. ‘얼마나 힘들면’이라는 생각은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만 가능하고, ‘저것도 애도 방법이구나.’하고 이해하는 것은 잠들기 전에나 가능하다.


초기 상담에서 아이를 먼저 보내고 이혼하는 부부가 많다고 했다. 우리도 예외 없이 시간이 흐를수록 부부 사이가 자주 위태로웠다. 처음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건,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였다. 남편은 한마디도 하지 않거나, 불편함을 드러냈다. "남편이 제일 힘들 거 같아. 남편은 좀 어때?"라고 묻는 말에 짜증이 났다. 친정 가족들도 매일 남편을 걱정하고, 만나는 사람들도 남편 눈치를 봐야 했다. '자기만 힘든가 난 표현을 안 할 뿐인데...' 아이와 남편을 챙기는 것 모두 내 몫이 되니 더 힘들다. 아이의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해하고, 세 명 모두 우울하거나 신경질적일 때는 누구 한 명도 받아주지 못하고 생채기만 난다.


다섯 명 모두 행복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을 다시 펼친다. 누구보다 소중한 옆 사람의 마음을 그려보려고 한다. 쓸수록 필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마음이 무거워 자신이 없다. 그래도 여전히, 그리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더 이상 나의 방법을 요구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먼저 자세히 봐야 한다. 아이와 남편, 다른 가족들의 마음을 가만히, 천천히, 오랫동안 바라봐야 한다.


노란색 물감을 쓰는 동안에는, 우리 가족의 마음을 그대로 그릴 수 있길. 내 방법을 요구하지 않길. 아픔을 비교하지 않고 기다려주길. 누구보다 서로를 아껴주길. 하루를 후회로 물들이지 않고 사랑할 수 있길. 가족사진처럼 잠시나마 미소 짓는 순간이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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