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함께 써보는
사랑하는 아빠, 오빠와 언니, A, 남편과 함께 엄마의 손길이 남아있는 친정집으로 갔다. 오빠네가 일주일 정도 함께 있으면서 집을 정리하기로 했다. 엄마와 오랜 추억이 쌓인 집에 아빠가 혼자 있으면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 바로 이사를 하자고 했다. 아빠는 괜찮다고 하지만, 정말 ‘괜찮아서’가 아니라 ‘마음의 준비와 정리가 필요해서’라고 해석이 된다. 아빠가 혼자 살기에 많이 적적해하지 않도록 인테리어를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날 이후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지만, 무언가에 쫓기듯 엄마 물건을 빠르게 정리한다. 그러다가 발견한 엄마의 노트를 꼼꼼히 읽어본다. 한쪽에 김장 김치 재료들이 적혀 있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음이 아리고 후회가 밀려온다. ‘공부하느라 바쁘다고 김장 도와주지도 못했는데... 내년에는 엄마 김장 김치 레시피 꼭 배운다고 했는데...’ 이제는 배울 수가 없다. 더 이상 엄마의 김치를 먹을 수가 없다. 아빠는 엄마 김치만 있으면 밥을 먹었는데, 아빠에게 해줄 수가 없다. 그 와중에 어떻게든 가족들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장을 보고 요리한다. 밥맛이 없고 먹고 싶지도 않지만, 서로를 위해 먹으려 애쓰는 가족들의 얼굴을 쳐다본다.
아빠는 충혈되어 뻑뻑한 눈에 안약을 넣는다. 배우자를 떠나보내고 얼마나 큰 상실을 느낄까. 앞으로 혼자서 어떻게 밥을 챙겨 먹고, 생활할지. 엄마 없이는 밖에도 잘 나가지 않던 아빠인데, 집에서만 지내는 건 아닐지. 자식들 앞이라고 다 표현하지 못하고 울부짖지 못하던 아빠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본인이 제일 어른이니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엄마가 친구들이랑 여행을 간 것 같다며 실감이 안 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현실을 직면하게 되는 날, 아빠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걱정된다.
엄마와 아이를 동시에 잃은 오빠의 얼굴이 굳어있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조카를 떠나보내는 마음도 이렇게 아리는데, 아이를 보내고도 다른 아이를 챙겨야만 하는 언니의 마음은 어느 정도일까.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묵묵히 모든 일을 맡아하는 남편의 얼굴도 본다. 남편을 의지할 수 있어서,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남편이 옆에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남편이 지켜주면 되는데 이들은 누가 지키지? 우리 가족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꼭 남은 가족을 지켜야 한다.
잊어버리고 있던 임용 1차 시험의 합격자 발표날이다. 엄마와 조카를 잃고 시험이고 나발이고 다 포기하고 싶었다. 결과에 관심도 없었고, 발표 날짜조차 잊고 있었다. 아빠와 함께 엄마 통장 정리를 위해 은행에서 대기 중일 때,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 1차 합격했어. 그동안 고생했어.’ 2년 동안 공부한다고 온 가족이 기다려줬는데, 합격 소식이 기쁘지 않다. 그동안 공부한다고 함께 하는 시간을 뒤로 미뤘다. 공부가 최우선 순위였기에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함이 있었다.
엄마가 퇴직 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딸이랑 데이트도 하고, 여행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엄마에게 “임용 합격하면, 방학 때마다 여행 가자.”라고 했다.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항상 “공부 중이라 바빠.”하고 끊었다. 공부한다고 잘 챙겨 먹지 못할까 봐, 맛있는 반찬을 잔뜩 만들어서 몰래 놓고 가려고 한 날도 있었다. 엄마가 집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도서관에서 집으로 오면서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왜 왔어.”라며 투정 부렸다. 웃는 엄마의 얼굴을 보니 딸을 향한 마음이 느껴져서 고맙고 미안했다. 딸의 도전을 늘 응원하며 묵묵히 버팀목이 되어주던 엄마. 1차 합격 소식을 기다렸는데 함께 기뻐할 엄마가 없다. 가장 소중한 걸 잃었는데 무엇을 얻기 위해 공부하나. 합격이 무슨 소용이지? 이게 뭐길래 그렇게 열심히 했나. 2차 준비는 무슨, 짜증 나고, 하기 싫다. 포기하자.
엄마와 조카를 갑자기 떠나보내야 해서 슬픈 마음 위에 남은 가족들을 향한 걱정과 불안이 겹쳐 버티기 힘들다. 가족들과 헤어지고 혼자 남았을 때, 슬픔에 잠겨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갔지만, 다음 날 또 가족들 걱정에 불안해진다. “언니가 잠을 못 자고 심장이 계속 아프다네. 갑상샘에 혹 있는 거 큰 병이면 어떡하지?” “아빠가 오늘 또 봉안당에 엄마 보러 갔다는데, 아빠 혼자 주저앉아서 울면서 힘들어하는 거 아냐?” “오빠가 고지혈증이래.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간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간암 오면 어쩌지?” 누군가를 갑자기 떠나보냈기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를 떠나보내게 될까 봐 불안하고, 염려한다. 그날 이후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을 따라 꼭 일어나서 매일 “안전 운전해. 늦어도 괜찮으니까 천천히 가. 안전이 제일 우선이야. 조심해야 해.”라고 말한다.
가족들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루는 남편이 말했다. “너도 사랑하는 엄마와 조카를 잃었어. 너도 힘들어. 지금 불안한 건 너 자신이야.”
남편의 말에 내 마음을 직면할 수 있었다. ‘스스로가 불안해서, 가족들이 위태위태하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거구나. 그 일을 나의 현실로 직면하지 못해, 제삼자가 되어 가족들을 바라보려고 하는구나. 누군가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구나. 내 엄마고 내 조카구나.’ 깨닫게 되는 순간 무너진다. 시선을 가족들에게로 돌려 외면해왔던 마음을 마주하게 되니 슬픔과 분노와 억울함이 몰려와 견디기 힘들다.
1차에 합격했다고 하니 엄마가 더 보고 싶다. 엄마한테 말하고 싶다. “엄마, 나 합격했어. 그동안 걱정 많이 했지? 항상 날 믿고, 매번 도와주고 기다려줘서 고마워. 엄마 덕분이야.” 엄마 생각이 너무 많이 나서,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연다. 핸드폰 사진첩에 있는 엄마 사진과 영상을 하나씩 자세히 본다. 영상 속에 살아 움직이는 엄마 모습을 보고,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 보고 싶고, 그립고, 엄마 품에 안겨서 엄마 살길을 느끼고 싶다. 왜 엄마가 없나 서럽고 억울하고 화나고 미안하다. 그렇게 소리 없이 울고 또 울다가 엉엉 운다. 남편이 소리를 듣고 방으로 들어와 나를 안아주고 아이를 달래듯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준다. 남편 품에 안겨서 대성통곡을 하다 갑자기 숨이 막히고 잘 쉬어지지 않는다.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순식간에 머리카락과 옷이 다 젖을 정도로 식은땀이 나고, 어지럽다. 남편은 놀라 심호흡시키고, 부축해서 침대에 눕히고, 정신을 잃지 않도록 말을 건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늘 자식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었다. 직장을 그만뒀다는 말에도 잘했다고 했다. 그동안 엄마가 원했던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가고 싶은 식당이 없냐고 묻자 엄마는 평소보다 더 밝은 목소리로 텔레비전에서 본 맛집을 가고 싶다고 한다. 검색해봤더니, 거리가 멀고 꽤 비싸다. 결국 가까운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백화점에 가서 쇼핑했다. “엄마 입을 옷 사줄게. 골라 봐.” 자신 있게 말했지만, 꽤 높은 가격대에 놀랐다. 티 내지 않아도 딸의 사정을 먼저 생각하던 엄마는 구경하며 매번 조용히 옷의 태그를 뒤집어본다. 결국 옷도 고르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날 엄마와 찍은 사진을 보며 후회한다. 비싼 맛집에 데려가고, 비싼 옷 사줄 수 있는데, 못 해준 현실을 되돌릴 수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
1차 결과 발표만 기다리던 엄마를 떠올리고 나니 무너져있을 수 없다. 게다가 지금 내가 실패하면, 가족들이 더 좌절될 것이다. 가족들이 얼마나 속상해할까.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가장 잘 아는데, 임용 합격 소식이 그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결국에는 갈기갈기 찢긴 마음을 잠시 덮고 또 가족들을 위해 해 보기로 한다.
지난 2년 동안 빠르게 돌아가던 머리가 그날 이후 멈췄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멍하니 앉아있다. 집중이 잘 안 된다. 무엇도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공부는 왜 하는 거지? 무엇을 위해 합격해야 하지? 그동안 꿈꾸던 미래가 사라졌다.
2차 시험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안방 침대에 엄마와 함께 누워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엄마는 퇴직 이후, 무료한 삶에 대해 고민이 있었다. 워낙 활동적인 엄마였기에 ‘휴식이 힘들겠구나.’ 하고 공감되었지만, “아빠랑 주말마다 등산도 가고 낚시도 가고 해.”라고 답했다. 엄마의 건강도 챙기고, 외로움도 살펴주는 좋은 딸이 되고 싶은데, 그때의 답은 ‘아빠 있잖아.’ ‘나중에 합격하고 함께 시간 많이 보내자’라고 한 발 뒤로 물러난 것만 같다. 결혼과 시험을 핑계로 엄마의 일상에 관심이 없었던 사실이 시리게 다가왔다. 엄마는 살아있을 때, 어땠지? 누굴 만났지? 어떤 이야기를 했지? 엄마는 어떤 하루를 살았을까?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는 핑계로, 엄마의 하루가 궁금하다는 이유로 엄마의 핸드폰을 켰다. 엄마랑 자주 만났던 친구와의 문자를 차근차근 읽는다. 제일 친한 친구에게는 속마음을 말하지 않았을까 싶어 토시 하나 놓치지 않고 눈에 담는다. 읽으면서 점점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빠는 평일에 회사에 있고, 엄마는 일을 쉬고 있었으니 많이 외로웠겠구나. 휴식이 힘든 게 아니라, 만나서 대화할 사람이 필요했구나. 엄마는 모든 사람에게 강인하고 멋진 사람으로 살아갔기에 정작 자신의 힘듦과 답답함을 터놓을 사람이 없었다. 많은 사람이 의지하는 사람으로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누군가를 의지하고, 누군가에게 투정 부리지 못했다. 누군가의 어른인 엄마도, 엄마에게 어른이 되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문자를 하나하나 다 읽고,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 나니 ‘역시 나는 엄마를 많이 닮았구나.’ 싶다. 나는 가족들에게만은 강인한 사람이 되어, 임용 시험 합격이라는 소식을 꼭 전해야겠다. 집중이 안 돼도 하고, 슬퍼져도 하고, 화가 나도 하고, 억울해도 해야지. 가족들에게 위로가 될 일을 꼭 성공시켜야지.
**시누이와 인터뷰를 하고, 일기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2차 수정은 시누이가 직접 했고, 그 이후의 퇴고는 다시 제가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