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레트 Aug 26. 2022

Prolog. 검은 마음으로 그리는 제주

‘검은’이라는 단어가 10번 사용되었습니다.

출처: pixabay

검은 마음으로


“엄마 색칠은 연한 색부터 하래. 혹시 실수해도 진한 색으로 칠하면 되니까.”

미술학원을 다녀온 아이가 가르쳐준 색칠 방법대로라면 나는 하얀색이나, 연한 노란색 같은 물감을 칠해야 한다. 정작 붓을 들고 보니 지금 칠할 수 있는 색은 검은색뿐이다. 컬러코드 000000의 검은색. 누군가에겐 깔끔해 보이고 예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이 들고 있는 검은색은 안아 줄 수 없어서 외로운, 덧칠할 수 없어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색이다. 이런 색깔을 먼저 칠해도 괜찮을까? 밝은 물감의 뚜껑을 열 날이 올까? 나는 검은 마음을 예쁘게 그릴 자신이 없다. 내가 보고 있는 제주는 예쁘니까, 누구나 보기 좋게 제주를 그리기로 했다. 시원한 파란색으로, 안정을 나타낸다는 초록색으로 내가 느끼는 제주를 색칠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 검은색만 주구장창 칠하다가, 옆 사람에게 빌린 파란 물감으로 점만 찍고 마무리하는 느낌이다. 어릴 적 ‘그래도 좋았습니다.’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로 마무리하던 일기 쓰는 습관이 반영되는 것 같다. 뜬금없이 ‘그래도 제주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변해야겠습니다.’로 마무리하게 된다.      


그리는 제주


사라지는 것을 붙잡고 싶었다. 흘러가는 것을 담고 싶었다.  쓰면서 ‘ 만나고 ‘ 이해하 ‘기록해서 의미를 만들고 싶었다.  이상 미루지 않고 글을 쓰기로 했는데 장애물이 너무 많다. 나열하자면 이렇다.


일. 내 마음이 뭔지 몰라 뒤죽박죽이다.

이. 나도 모르는 마음을 대신 알아달라고 떼쓰는 글이 너무 부끄러워 숨고 싶다.

삼. 책 읽는 걸 좋아했지만 글쓰기는 일기, 리포트와 논문 외에는 경험이 없다.

삼. 마지막이 ‘좋았습니다.’로 어색하게 끝이 난다.

사.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아직 ‘실패한 상태’로 해결책을 찾지도 못했고, 오답 노트를 쓰지도 못했다. 나는 실패한 상태에서 실패한 과정을 쓰려고 한다.      


그럼에도 검은 마음으로 제주를 그리려고 한다. 이것은 ‘좋았습니다’의 결론은 아니며,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다.’와 같은 결심도 아니다. 글은 시선을 나로 향하게 한다. 외면하고 부인했던 나를 돌아서게 한다. 바람이지만 차차 내 마음이 뭐라고 소리치는지 듣게 될 것이고, 내가 누리지 못하는 제주를 느끼게 할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제주를 돌아다닐 것이고, 글을 쓰면서 ‘좋았습니다’를 검은 마음에 선포할 것이다. 이것은 ‘그렇게 하루를 견디겠습니다.’라는 결론이며, ‘무의미한 순간은 없습니다.’라는 새김이다.


“나는 글을 계속 쓸 것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