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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다에레스 Dec 08. 2022

나는 효녀 코스프레 중이다

남들이 보기에만 효녀

“OO아, 엄마 여기 두고 가지 마! 엄마 여기 아무도 모르고 낯설어! 제발 두고 가지 마! 버리고 가지 마!" 아직도 엄마의 눈물 섞인 울부짖음이 귓가에 들린다. 엄마가 요양병원에 가던 날, 엄마는 혼자 두고 가지 말라고 병동이 다 뒤집히도록 난리였다. 엄마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산속에 있는 병원이라 셔틀버스도 일찍 끊긴 지 오래였다. 택시를 잡기 위해 캄캄한 산길을 나 홀로 내려오는 길. 마음은 울고 싶었지만, 캄캄한 산길이 무서워 눈물을 흘릴 여유조차 없었다. 내 모습이 매정하게 느껴져 엄마를 버리고 오는 고려장 같았다. 내가 편하게 지내자고 엄마를 홀로 두고 왔다는 생각에 힘들어서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가 병원에서 생활한 지 13년째. ‘난 어쩌면 성인이 되자마자 부모의 그늘에서 딱 벗어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차고, 어려운 인생을 살고 있구나 싶다. 열아홉 살까지 엄마의 아래에서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었다가, 스무 살이 되자마자 엄마를 보호해야 할 보호자로 살아왔다.


“더 이상 우리 엄마 더 힘들게 하지 말고, 너희 엄마, 네가 책임져!” 엄마가 1년여 정도 통원 치료를 받으며, 할머니 댁에서 지내셨던 시기였다. 친척들이 모일 때마다, 엄마는 온 가족의 골칫덩어리였다. 더 이상 할머니를 힘들게 하지 말라고, 자녀인 내가 홀로 책임지라고 말하던 친척들. 늙으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통제가 안 되는 엄마를 돌보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도 나이만 20대일 뿐 그냥 어린아이에 불과했었는데, 가족인데도 내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친척들이 너무 미웠다. 가족의 연을 끊을 생각으로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엄마를 혼자 돌보기 위해 서울에 있는 자취 집으로 모셔왔다. 엄마와 지내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문을 열고 밖에 혼자 나간 적도 많았는데, 서울 지리를 전혀 모르는 길 잃은 엄마를 찾기 위해 당황했던 적도 많았다. 함께 지내는 한 달 동안,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자는 사이에 엄마가 집을 나가면 어쩌나 싶어서 마음 놓고 쉬어본 적이 없었다. 스트레스가 심해 면역력도 떨어지고, 아나필락시스 증상과 부정맥이 나타나서 죽을 뻔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엄마를 돌보며 살다 보니까 도저히는 이렇게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OO아, 너 그렇게 살다가는 너도 잃어버려. 네가 건강하고 네 인생 살아야 엄마를 지킬 수 있는 거야.” 죽겠다는 나의 눈물 섞인 전화에 막내 이모가 엄마를 요양병원으로 보내는 걸 권유했다.


엄마를 돌보며 버텨보겠다는 계획은 한 달 만에 그렇게 실패해버렸고, 그렇게 십여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어려운 시간도 있었지만, 병원에 계시는 동안 나는 내 삶에 집중하고 살아갈 수 있었다. 결혼도 했다. 하지만 엄마를 결혼식에 초대할 수 없었다. 하나뿐인 딸의 결혼식에도 오지 못하는 엄마의 처지가 어떨지, 죄송한 생각에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지만, 죄책감이 들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엄마 면회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병원비를 수납하는 것뿐. 지난 2년 동안 엄마를 만나지 못했는데, 오히려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매번 엄마를 보고 나면 마음이 무너져서 몸살이 나곤 했었는데, 2년 동안 엄마를 만나지 못하니 그럴 일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모두가 십여 년 동안 엄마를 홀로 부양한다고 하면 내가 효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내 이득만을 챙기고 엄마가 없으면 더 후련해하는 사람인 걸 그들은 모른다. 엄마가 이제 돌아가셨으면, 수천 번을 빌고 빌었다. ‘엄마가 더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마음으로 포장을 한 채, 내가 더 이상 누구에게 발목 잡힌 삶을 살고 싶지 않은 내 이기심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효녀가 아니다. 엄마는 나만 바라보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는 내가 더 중요한 사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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