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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Nov 04. 2023

'시인'을 선물하는 이유

이런 사람이 좋다

"나는 이런 시간이 너무 좋아"

"문학이야기를 하면서 감성을 나눌 수 있어서......"

60대 초로의 그는 만날 때마다 늘 수줍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또래 동성친구들과 있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동물원 원숭이 바라보듯 하는 시선 때문에 절대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유수의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인 그는 책을 매우 좋아한다. 근무하는 사무실 한쪽 벽면은 다양한 분야의 책들로 가득하다. 운전석에도 책 한 권 정도는 항상 꽂혀 있고 누군가에게 책 선물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책을 건네주기 위해 상대방과 자연스러운 만남이 수반되기 때문이란다. 길든 짧든 만나면 그 또는 그녀와 감성이 묻어나는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갈라졌던 마음이 촉촉해진다는 것. 지난달부터 그는 매월 출간되는 '시인' 잡지 구독을 시작했다. 두 권을 주문해 한 권은 본인이 읽고 나머지 한 권은 나에게도 선물한다. 그때마다 그는 카톡을 보낸다. "책이 도착했어요. 어디서 볼까요"라고.


오늘도 그랬다. 이른 아침 얼마 전 별이 되신 김남조 시인이 표지인물로 등장한 잡지 표지를 카톡으로 보내왔고 이내 점심 번개를 제안한다. 덕분에 오늘 점심은 비슷한 취향 덕분에 함께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그까지 셋이 모여 뜨끈한 동태탕을 함께 먹었다. 화제는 특별할 것도 없고 늘 대동소이한 소소한 일상들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시인 '김남조'의 시 '가난한 이름에게'로 시작해서 오래전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 추억까지 이어졌다. 대화의 마지막 주제는 첫눈. 문득 눈이 내리는 날 오늘처럼 반갑게 만나자는 일행의 제안에 그때는 너무 멀었다느니, 11월 중순이면 눈이 온다느니 일상 다반사를 나누다 헤어졌다.


  이런 사람이 좋다. 나에게 이득이 될까 유무를 따지지 않는 순수한 사람.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만나면 편안해지는 사람. 막걸리 한잔에도 행복해하고 부족한 상대방을 늘 귀한 사람으로 여겨주는 사람. 어른이 되려면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하며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는 사람. 좀 더 나를 사랑하며 살아야겠구나 하는 마음을 일깨워 주는 사람.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 나 쓰일 모 없이 살다 갑니다 /로 시작되는 김남조시인의 시를 좋아한다는 그의 '시인'선물 덕분에 에너지를 얻고 요즘의 나를 돌아보는 날이다. 얼큰한 동태탕 덕분에 몸이 후덥해지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조우로 얼굴까지 환해졌으니 그저 감사할 뿐. 작년에는 첫눈이 언제쯤 내렸지 되짚어 보며 벌써 그들과의 만남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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