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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Mar 20. 2024

적당한 무관심

밥벌이 단상 1

병원에 다녀왔는데 큰 수술까지 해야 하는 심각한 진단을 받았다는 후배의 메신저가 가슴을 휘젓는 오후. 얼마 전에도 감기에 걸렸다가 폐렴까지 이어져 고생했던 그녀다. 이내 차 한잔 하자고 약속을 정한다.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병원 진단결과와 치료계획을 상세하게 풀어놓으며 한숨짓는다. 본인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큰 병증인데 아주 사소한 감기처럼 담담하게 전하는 의사의 무심한 말투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못내 서운해한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기에 그녀의 심경을 백분 이해한다며 맞장구를 쳐보지만 환자 본인이 느끼는 체감도나 심각성을 의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무심한 듯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환자를 위로하는 그들의 작은 배려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대형 병원에서 한번 더 검사를 받고 싶은데 최근 이어지고 있는 전공의 파업으로 진료 일정 예약이 어려울 것 같다며 병원 인맥을 묻는다. 자리를 함께한 A도 얼마 전 수술 경력이 있는 터라 경험담을 공유하며 그녀를 어루만진다. 기간에 관계없이 수술과 치료를 받는 동안 직장 업무를 비롯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돌보는 일까지 여러 상황이 복잡해지는터라 내 일인 듯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마주 앉아 대화를 주고받아도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은 딱히 없지만 마음을 나누고 하소연하는 그 자체가 작은 위로가 되는 시간이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일단 서울 인근 병원 예약을 알아보자고, 분명히 잘 될 테니 미리 너무 많은 걱정을 하지 말자는 것으로 짧은 티타임이 마무리되어 갈 무렵 그녀가 부서장의 지나친 관심이 때론 불편하다며 하소연한다. 요즘에는 연차를 사용한다고 결재가 올라와도 그 정확한 사유를 묻는 것 또한 조심스럽다. 더구나 사생활과 연관되는 경우 본인이 먼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예 묻지 않는 것이 직장룰로 자리 잡았다. 개인에 대한 관심 자체를 불편해뿐 아니라 이를 반영하여 결재시스템에 사유를 기재하는 칸도 아예 없어졌다. 하물며 지극히 사적인 사항이거나 말하기 꺼려지는 질환이어서 더욱더 모른 척해주길 바라는 상황인데 '나는 너에게 많은 관심이 있다'라고 공표라도 하듯 큰 소리로 묻는 경우에는 더욱 난감하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다. 몇 년 전 건강에 이상이 생겨 평소에 쓰지 않던 휴가를 연달아 쓰고 치료 때문에 보름이상 매일 조퇴를 했던 때였다. 정확하게 병명을 이야기 안 하니 어지간히 궁금했던지 동료들 사이에서는 죽을병이 걸렸다느니 하는 과장된 소문까지 돌았다는 후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같이 근무하는 부서장이나 팀원을 비롯한 동료들 중에 직접적으로 어디가 아픈지 어느 병원을 다니는지 구체적으로 묻는 사람은 없었다. 나 또한 나중에 소문을 듣고 나서 다행히 죽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전해달라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 정기검진에 이상이 있어 연이어 휴가를 쓸 때도 상사는 잘 다녀오라는 말 외에는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고 그 마음이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그분의 성정이 타인의 일에 관심이 없는 탓일 수도 있지만 당사자인 나에게는 따스한 배려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졌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관심이 없다는 건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다는 다른 말이다. 연애를 시작했을 때 상대방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그에 대한 수많은 궁금증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의 숨소리와 발걸음, 일거수일투족을 비롯해 그의 모든 순간들이 알고 싶어지는 것, 그것을 다른 말로 사랑이라고도 말한다. 물론 상대방을 지나치게 얽매이거나 집착할 정도에 이른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닌 폭력이 된다. 혹자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고 상대방을 괴롭히는 일도 있지만 그것은 폭력 중에서도 가장 큰 폭력의 다른 표현 방식이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표현도 필요하지만 적당한 거리는 필수요건이다. 직장뿐 아니라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많은 것들을 공유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또는 그녀의 모든 것들을 속속들이 알려고 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도 적당한 간격이 있을 때 바람이 통하듯 서로에게도 숨 쉴 공간이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염려 또는 관심이라는 핑계로 폭력 아닌 폭력을 휘두르고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볼 일이다.


오늘도 같이 근무하는 부서원들의 휴가 결재가 잇달아 올라온다. 봄을 맞아 아이들을 동반한 여행을 비롯해 친구들과 오랫동안 계획했던 일정까지 사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거의 이유는 묻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부담스럽게 여길 수도 있고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직접 경험했던 상황들인지라 그네들의 심경을 백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다음 날 오전, 그녀는 밤새 치료를 걱정하느라 잠을 못 이뤘노라고 하소연하면서 다행히 서울에 있는 대형 국립병원 진료예약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겠지만 잘 견뎌내고 조만간 그녀의 얼굴에 화사한 웃음꽃이 피어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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