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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Mar 29. 2024

초보운전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각에 알람이 울리면 습관처럼 일어나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가족들을 위한 아침 식사를 챙기지 않아도 어영부영 금세 한 시간이 지나간다. 야채와 과일로 간단한 요기까지 하고 현관문을 나서면 대략 오전 8시쯤. 지방 소도시임에도 그 시각을 기점으로 아침 도로교통 상황은 많은 차이가 난다. 직장인들의 출근시간이 거의 비슷한 탓이다. 아파트 앞 어린이 보호구역이 설치되어 있는 초등학교를 지나면 바로 4차선 도로로 진입해야 한다. 이곳에서 좌회전은 다소 운전 경력을 필요로 한다. 별도 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차량이 없는 때를 잘 맞춰 신속하게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대로에서 주행하는 차들이 전방 사거리의 빨간 신호등 때문에 잠깐 주춤하며 속도를 줄일 즈음에 신속하게 마음의 결정과 동시에 실행에 옮겨야 한다. 잠시 망설이거나 딴생각을 하느라 멈칫하기라도 하면 다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이날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시간은 이미 오전 8시가 넘어 출근 차량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었고 안타깝게도 내 앞 차량 뒷면 유리창에는 '초보운전'이라는 큰 글씨가 긴장한 표정으로 떨고 있었다. 설마 했던 염려는 현실이 되었고 앞 차량은 묵묵히 제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3분 여가 지날 무렵 성격 급한 내 손은 나도 모르게 클랙션 위로 올라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쪽에서 대기하던 차량들도 질세라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경적소리가 무색하게도 나를 비롯한 운전자들은 결국 5분이 훨씬 지나고 나서야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모든 일에는 '처음'이라는 과정을 겪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부담스러운 처음은 아마도 초보운전이 아닐까 싶다. 첫사랑, 첫 출근, 첫 만남의 처음이 주는 설렘과 기대하는 마음의 무게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심지어 일정기간 연수를 마쳤음에도 초보 자격으로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발끝에는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양손으로 운전대를 꽉 잡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의자는 운전대와 최대한 가깝게 당겨 앉으니 자세는 불편하고 여유 있게 전방을 주시하는 일은 꿈도 못 꾼다. 오로지 전방에만 시선이 고정될 뿐이다. 갑자기 차선을 변경해야 한다거나 옆차선이나 뒤에서 따라오던 차량이 살짝 경적이라도 울리며 차간 거리를 좁혀오면 심장 박동은 더 커지고 어느새 등줄기에는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많다. 타고난 길치에다 운동신경까지 없는데 운전을 하고 있는 그 자체가 신통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어느새 20여 년 넘게 운전을 하고 있고 운 좋게 무사고 경력을 보유 중이다. 처음 남편에게 운전을 배울 때 2차선 시골길 아스팔트를 지나다가 가을볕에 건조하려고 널어놓은 벼를 그대로 밟고 지나가 배상해주기도 했고 울타리 안에 있는 나무를 들이받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낯선 지역에서는 길을 잘못 들어 무리하게 차선 변경을 하다가 식은땀을 흘리기도 한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차량 행렬이 거의 없어질 무렵 계속되는 경적소리에 안절부절못했을 초보운전 차량이 서둘러 좌회전을 한다. 그 뒤를 따라가며 미안한 마음에 살짝 계면쩍어진다. 고작 몇 분을 못 참고 조급해했던 운전자들 때문에 정작 맨 앞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운전 경력이 짧으니 이어지는 차량 행렬 사이를 뚫고 자연스레 진입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 없는데 무작정 차도로 진입할 수도 없는 좌불안석의 상황이었을 텐데 배려가 없는 경적소리까지 이어졌으니 얼마나 난감했을까. 얼마 전부터 운전에 입문한 여동생도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자 얼굴이 더 붉어진다. 


저녁 산책을 하면서 남편에게 아침 상황을 얘기했더니 이내 나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면박을 한다. 처음 운전할 때 밀려오는 차량 사이로 끼어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알면서 그렇게 했냐며 혀를 차는 것이다. 마음이 조급한 출근시간인데 너무 오래 지체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면서도 이내 그 운전자에게 미안해져 목소리가 작아지고 만다. 살면서 무엇이든 내가 처음이었을 때 마음을 기억하며 산다면 아마도 경적을 울려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는 만드는 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마치 처음부터 무엇이든 능숙하게 잘 해낸 것처럼 착각하거나 초보자의 수준이나 잣대가 아닌 경력자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기대하는 것이 늘 화근이다. 아마 그도 능수능란하게 잘하고 싶지만 경험이 없어 대처능력이 부족한 것일 뿐일 텐데 말이다. 


오늘도 삶의 현장 곳곳에서 수많은 초보들이 가슴 졸이며 긴장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여전히 초보로 살아가야 할 많은 일들이 많은 현실을 떠올린다.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 속을 걸어가며 느꼈던 초조하고 난감했던 수많은 처음과 초보의 순간들을 기억하며 오늘도 삶이라는 운전대를 꽉 잡고 세상 속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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