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숙 Oct 12. 2024

또 다른 나, 세 글자

나의 빛깔과 향기에 맞는 이름

토요일 아침, 미뤄둔 병원투어를 위해 8시에 집을 나섰다. 첫 번째 행선지는 내과. 몇 넌 전부터 복용 중인 골감소증 약 처방을 위한 정기검진을 위해서다. 습관처럼 도착한 병원 근처 도로가 한산하다. 내심 당황했지만 병원 입구에 있는 이전 안내문을 확인하고 다시 차에 시동을 건다. 인근 5층건물로 확장 이전한 병원에 도착하니 오전 8시 10분. 이른 시간인데 제법 사람이 많다. 전보다 훨씬 넓어진 병원구조가 낯설어 두리번거리다가 간신히 번호표를 뽑아 들고 대기석에 앉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접수를 마치고 기다림의 시간. 차트를 든 직원이 내 이름을 부른다.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는데 근처에 있던 다른 환자가 일어나 그쪽으로 향한다. 분명 내 이름인 것 같았는데 너무 당당하게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내 귀를 의심하며 다시 의자에 앉는다. 이름이 불린 그녀는 혈압을 잰 후 차트를 들고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조금 전 호명했던 직원이 다시 내 이름을 부른다. 내가 대답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선 순간, 직원이 뭔가 잘못됐다 싶었는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는 그녀에게 달려가 이름을 재차 확인한다. 


알고 보니 그녀와 내 이름은 성만 달랐다. 그녀는 자칫하면 내 대신 골다공증 검진을 받으러 갈 뻔한 상황이었던 것. 직원에게 내 차트를 건네주고 다시 돌아온 그녀가 뻘쭘한 듯 이름이 비슷해서 자기를 부르는 줄 알았다고 말한다. 그녀가 어색할까 싶어 나도 "워낙 흔한 이름이잖아요"라고 한마디 보태며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나는 간신히 내 차트를 돌려받았고 검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다음은 검사결과를 확인하는 순서. 진료실 앞에서 다시 대기 중인데 또 내 이름이 불린다. 내 이름인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50대 여성이 먼저 잰걸음으로 접수대 앞으로 걸어간다. 이번에는 성은 다른데 이름 가운데 글자가 같은 사람이다. 


내 이름은 70년대생 10명을 모아두면 한 두 명은 꼭 끼어있을 정도로 흔한 이름이다. 딸부잣집에는 한 두 명은 꼭 있을 정도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는 성까지 똑같은 친구도 있었다. 키와 체구는 물론 심지어 성적까지 비슷했던 친구였다. 그나마 성적이 비슷해 비교 대상이 안되니 다행이다 여기곤 했다. 물론 성만 다른 친구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여럿 있었다. 대학교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40명 밖에 안 되는 동기들 중에도 어김없이 성은 다르지만 이름이 똑같은 친구가 있었다. 흔하고 평범한 이름이지만 신기하게도 개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별로 없다. 그나마 성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흔하다는 '김, 이, 박'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겼던 것 같다. 아이들의 이름은 시어머님이 발품을 팔으셨다. 소액의 작명비를 주고 평소 다니시는 절에서 이름 몇 개를 받아오셔서 그중에서 그나마 무난한 것으로 골라 출생신고를 했다. 둘 다 그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지극히 평범하고 조금 시골스럽다.  한창 예민했던 시절, 아들은 이름이 만화주인공과 같아서 친구들에게 놀림받는다며 개명해 달라고 조른 적도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생들을 만나는 날이다. 얼굴은 물론이고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상황인 탓에 친구들에게 붙여줄 이름표를 만드는데 그중에 이름을 두 개 적어놓은 친구가 두 명이나 있다. 졸업 이후에 개명한 친구들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조금 더 나와 잘 어울리는 이름을 갖고 싶어서 등 그와 그녀의 개명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진다. 출생신고로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되면 내가 이 세상과 영원히 헤어지는 순간까지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이름 석자. 아니 간혹 외자도 있으니 두자는 어쩌면 내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또 다른 내 모습이다. 나는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으로 살고 있을까 되짚어보며  비슷했던 낯선 그녀들 덕분에 부모님이 지어주신 귀한 내 이름자를 모처럼 한 글자씩 불러보는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가벼운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