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어제 비 안 왔는데?! 좀 이상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무지개 덕분에 그 순간 동심으로 돌아가 무지개 구경에 신이 났다.
오늘 오전엔 테아나우 호수 근처에 있는 뉴질랜드 고유의 조류를 보호하고 있는 '와일드라이프 센터'를 둘러보기로 했다. 뉴질랜드에는 호수 주변에 오리나 새가 진짜 많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거짓말 조금 보태 초원의 양과 소떼만큼이나 많은 듯싶다. 덕분에 날개 달린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조금은 그들과 꽤나 친해진 기분이 든다.
다른 것 보다, 와일드라이프 센터로 들어가는 길이 나는 참 좋았다. 호수가 보이는 작은 숲 길. 제법 실한 나뭇가지들이 많아서 아이들 놀잇감으로 제격이었다. 그동안 숲 모임에서 많이 보아오던 그 모습과 흡사했다. 길을 걷기 시작하자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고, 아이들과 놀면서 걷다 보니 10분이면 갈 곳을 30여 분동 안 걸린 듯하다. 그 시간이 나에겐 참 피로회복제 같았다.
이 길을 걷는 내내 평화롭고 행복했다
저 멀리 뛰어오는 누군가를 발견했는데 남편이었다. 우리를 먼저 내려주고서 먼길 돌아 주차를 하고 센터 앞에 도착해서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걱정이 되어 뛰어왔다고 했다. 거 참, 여유 부린 게 미안해지네...^^
센터로 들어가 여러 종류의 새와 오리 등 몇 가지의 조류를 이리저리 다니며 구경했다. 난 기본적으로 새를 무서워하기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애들을 처음 보는 새들에 신기해하며 좋아하니 다행이었다. 다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넓고 멋진 잔디밭이 있어서 잠시 놀았다. 역시 애들은 뛰어놀아야 하나보다. 잔디만 보이면 달리기를 하자는 큰 녀석과 작은 아이가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웃는 모습에 그동안 쌓였던 그 뭔가가 사라지는 것처럼 후련함을 느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잠시 테 아나우 호수 구경을 하며 거친 숨을 가다듬었다. 뉴질랜드에는 호수가 참 많기도 많다. 어느 도시를 가도 호수는 필수템이다.다음 일정인 와나카도 호수의 도시로 , 언젠가 살고픈 도시로 인기가 많다고 하고 퀸스타운, 테아나우와 더불어 남섬의 3대 최고 휴양지라는데... 내심 기대가 된다.
테 아나우에서 퀸스타운을 지나 와나카까지 약 3시간이 걸리는데, 남편이 자꾸 몇 킬로미터가 남았는지 물어봤다. 그러더니 주유 등에 불이 켜졌단다. 허걱~ 아직도 수십 킬로미터는 직진을 하라 하는데, 뉴질랜드의 고속도로에는 주유소가 별로 없었다. 끝도 없이 들판, 논밭, 초원만 계속되었고, 가까스로 작은 마을에 들어섰는데 역시나 주유소는 없었다.
아이들이 잠든 사이 여유롭게 듣던 음악도신경에 거슬려 꺼버릴 만큼 긴장상태가 되었다. 때마침 꿀을 샀던 가게가 보여서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물어보니 10분 정도 가면 주유소가 있다고 했다. 이 낯선 곳에서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다행이다. 킹스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가까스로 주유를 하고 다시 출발! 또 한 번의 예상치 못한 산을 넘었다. 휴~~~
퀸스타운을 지나 와나카로 가는 길은 제법 무섭고 가파른 길이었다. 뉴질랜드의 도로에 익숙한 키위들의 운전은 반대편 차로에서는 위협을 느낄 만큼 참 거침없고 대담했다.여행 중 뉴질랜드의 키위들에게서 느꼈던 차분함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역시 사람은 술을 먹여보고 운전하는 모습을 봐야 진정한 내면을 알게 되는 걸까? 오르막길에 다다르니 많은 차들이 멈춰있었다. 우리도 잠시 내려보니 경치는 좋은데, 워낙 높은 곳이라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아이들과 경치 구경을 한답시고 서 있자니 제법 불편했다. 그런데 이곳이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포장길이라고 했다. 그 말에 큰아이는 인증샷 한 장 찍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 있는 법! 다행히 내려가는 길은 완만했고, 멀리 보이는 주변 풍경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가다 보니 햇빛에 반짝이는 파란 호수가 보인다. 예쁘다. 일단 와나카의 첫인상은 합격이다.
우리가 지낼 숙소는 홀리데이파크로 캠핑장 같은 곳인데, 여가서는 4일을 지내기로 했다. 숙소 바로 옆에 놀이터와 트램펄린도 있어서 아이들 놀기 좋겠다싶어 좋았다.
마침 우리 숙소 옆쪽으로 사유지에는 집이 한채 있었는데, 집 앞 정원에는 양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늘 차 안에서 멀찌감치서 보기만 했던 아이들은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양을 보고 무슨 친구라도 만난 냥 엄청 좋아했다.
그렇게 또 새로운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으니, 긴장도 같이 풀리는 듯했다. 아이들은 새로운 숙소가 이젠 기대가 되나 보다. 작은아이 말이 뉴질랜드에는 우리 집이 없어도 한 번씩 한 번씩 숙소를 바꾸면 되니 괜찮단다. 명확하지 않은 5살 아이의 이 말이 나에게는 "엄마~ 나 이제 여행에 많이 적응하고 있어요~"라고 들려왔다.이렇게 조금씩 아이들도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익숙해지고, 새로운 환경에도 잘 적응해가고 있었고, 그렇게 우리 부부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로는 표현이 어려운 그 메시지들이 그들의 가슴에 전달되고 있는 중일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꽉 차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