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든 시계인데, 왜 우리 이름은 없을까?” 한국 시계 산업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이라는 단어는 빼놓을 수 없다. 이 단어는 기회와 한계, 기대와 좌절이 교차하는 한국 시계 산업의 애증 어린 키워드다.
특히 1970~80년대, 한국은 일본을 비롯한 해외 유명 시계 브랜드의 OEM 생산 기지로서 빠르게 성장했다.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은 분명 우리에게 큰 기회였다. 당시 국내 업체들은 대규모 수출 계약을 따내며 생산량을 급격히 늘렸고, 짧은 시간 안에 시계 제조 기술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회는 동시에 자체 브랜드 육성에 소홀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낳았다. ‘한국에서 만들었지만, 한국의 이름은 없는’ 제품들이 쏟아졌고, 우리는 기술 종속과 브랜드 부재라는 구조적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OEM은 우리 산업의 성장을 이끈 동력이었지만, 자생적 브랜드 경쟁력이라는 더 큰 미래를 미뤄두는 선택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번 챕터에서는 한국 시계 산업의 초창기, 일본 브랜드의 OEM 생산을 통해 성장했지만 동시에 한계를 겪었던 그 치열한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고자 한다. 그 시절을 살아낸 이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값비싼 교훈은 오늘날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이 무엇인지부터 명확히 짚고 넘어가자.
OEM이란 주문자가 제품의 설계, 개발, 디자인 등을 주도하고, 생산은 외부 업체가 담당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즉, **제품에는 주문자의 브랜드(상표)**가 부착되어 판매되지만, 실제 생산은 제3의 업체에서 이뤄진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나이키 운동화, 애플 아이폰 역시 대부분 이 OEM 방식으로 생산된다. 브랜드는 나이키나 애플이지만, 실제 제조는 다른 나라의 공장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OEM은 주문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명확한 이점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구조적인 한계도 가지고 있다. 아래는 OEM 방식의 대표적인 장단점이다.
•OEM의 장점:
o주문자 입장:
자체 생산 설비 없이도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 초기 투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생산 부담을 외부에 맡김으로써, 브랜딩, 마케팅, 유통에 집중할 수 있다.
여러 생산 업체를 활용해 유연하게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o생산자 입장:
안정적인 물량 확보로 공장 가동률을 높이고,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주문자를 통해 선진 기술이나 품질 관리 시스템을 접하고 배우며, 자체 기술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OEM의 단점:
o주문자 입장:
생산 과정을 직접 통제하기 어려워 품질 관리에 한계가 생길 수 있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기술이나 노하우가 생산자에게 유출될 위험도 존재한다.
o생산자 입장:
자체 브랜드 없이 주문자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문자의 정책 변화나 계약 해지에 따라 경영상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성과와 인지도는 주문자의 브랜드에 귀속되므로, 자체 브랜드를 알릴 기회가 제한적이다.
단순 생산에 머무를 경우, 기술 발전이 정체될 위험도 있다..
OEM은 이처럼 양측 모두에게 기회이자 제약이 될 수 있는 이중 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 시계 산업은 바로 이 OEM 구조 속에서 짧은 시간 안에 기술력을 쌓았지만, 동시에 자체 브랜드를 키우는 데 실패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다음 장에서는 이 OEM 시대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우리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970년대 초, 한국은 아직 가난한 나라였지만 ‘한강의 기적’을 꿈꾸며 산업화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들끓고 있었다. 정부는 수출 중심의 경제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며 제조업 육성에 전력을 다했고, 국내 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해 가고 있었다.
바로 그 시기, 일본 시계 산업의 변화가 한국에게 예기치 못한 기회를 안겨주었다.
당시 일본은 ‘쿼츠 혁명’을 통해 시계 산업의 세계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었지만, 급속한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인건비 상승이라는 부담이 자리하고 있었다.생산비용을 낮추고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 시계 브랜드들은 해외로 눈을 돌려 새로운 생산 기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에 포착된 곳이 바로 ‘한국’이었다.
한국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물류 접근성이 좋았을 뿐 아니라, 당시 기준으로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숙련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한국인 특유의 손재주와 성실함, 그리고 높은 교육열은 정밀함과 반복 작업이 요구되는 시계 조립 산업에 안성맞춤이었다. 여기에 정부의 적극적인 수출 장려 정책과 각종 인센티브까지 더해지며, 일본 기업들에게 한국은 매력적인 파트너로 부상하게 된다.
이처럼 시대적 배경과 양국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1970년대 중반부터 세이코(Seiko), 시티즌(Citizen), 오리엔트(Orient) 등 일본의 주요 시계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한국에 OEM 생산을 맡기기 시작했다.초기에는 케이스, 밴드 등 단순 부품 생산 위주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무브먼트 조립까지 범위가 확대되었고, 결국 완제품 시계 생산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한국은 순식간에 일본 시계 산업의 핵심 생산 기지로 떠오르게 된다.
이 시기의 OEM 경험은 한국 시계 산업에 기술 습득과 생산 노하우 축적이라는 기회를 제공한 동시에, 이후 브랜드 정체성과 독자적 산업 기반 부재라는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다음 장에서는 이 OEM 관계가 산업 발전에 미친 긍정적 영향과 그림자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970~80년대, 일본 브랜드의 OEM 생산은 당시 걸음마 단계였던 한국 시계 산업에 '젖줄'과 같은 존재였다. 한국이 본격적인 제조업 기반을 세우고 세계 시장에 발을 들이는 데 OEM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선진 기술 습득의 창: 당시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시계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의 OEM 생산을 맡게 되면서 한국은 단순 조립 기술은 물론, 정밀 부품 가공, 엄격한 품질 관리, 효율적인 생산 관리 기법 등 다양한 선진 기술과 노하우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었다. 일본 기술자들이 직접 한국 공장을 찾아와 기술을 지도했고, 한국 기술자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연수를 받으며 현장 경험을 쌓기도 했다. 이 교류는 한국의 시계 기술 수준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필자 역시 이 시기에 일본 시계 회사들과 OEM 거래를 하며, 밤낮없이 그들의 도면을 분석하고, 생산 방식을 익히며 시계 기술의 기초를 다졌다. 때로는 까다로운 요구 사항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지만, 그 경험이 결국 우리 실력을 키우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안정적인 수출과 고용 창출: OEM 계약은 곧 안정적인 대규모 주문 물량 확보를 의미했다. 이는 국내 시계 공장들의 가동률을 높이고 수출액을 증가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시계 산업은 대표적인 노동 집약형 산업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 당시 시계 공장에는 젊은 여성 근로자들이 다수 근무했으며, 이들의 섬세한 손길은 한국 시계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OEM은 단순한 생산 이상으로, 국민 경제에 실질적인 기여를 한 산업이기도 했다..
•국내 시계 산업 기반 확립: OEM을 통해 축적된 기술력과 자본은 이후 자체 브랜드 시계 산업의 토대가 되었다. 삼성, 한독, 오리엔트, 아남 등 국내 대기업들이 시계 시장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OEM 경험 덕분이었다. 또한, 시계 부품을 생산하던 수많은 중소 협력업체들 역시 함께 성장하며, 한국 시계 산업 생태계의 기틀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1970~80년대 OEM은 한국 시계 산업을 일으켜 세운 일등 공신이었다. 우리는 일본의 기술을 배우고, 그들의 자본으로 공장을 돌리며, 세계 시장에 우리 손으로 만든 시계를 수출했다. 당시 OEM은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버는’ 매력적인 사업 모델로 여겨졌고, 실제로도 그만한 가치를 만들어냈다..
OEM 생산은 한국 시계 산업에 중요한 성장의 기회였지만, 그 현장은 결코 장밋빛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수많은 땀과 눈물, 그리고 말하지 못한 애환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늘구멍 같은 품질 기준과 살인적인 납기 압박: 일본 바이어들의 품질 요구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까다로웠다. 머리카락 굵기의 미세한 흠집 하나조차 용납되지 않았고, 부품 하나하나의 규격과 조립 상태는 현미경 수준으로 검수되었다. 불량률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는 밤샘 작업을 일상처럼 반복해야 했고, 생산 라인에서는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납기 압박 또한 치열했다. 정해진 날짜까지 물량을 납품하지 못하면 막대한 페널티를 부담하거나 다음 계약을 잃는 경우도 있었기에, 마치 전쟁을 치르듯 생산에 매달려야 했다.
필자 역시 당시 일본 바이어들과의 미팅에서 품질 문제로 언성을 높이며 얼굴을 붉혔던 기억이 생생하다. 때로는 억울했지만, 돌아보면 그들의 철저한 요구가 결국 한국 제품의 품질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핵심 기술 이전의 벽, 그리고 숨겨진 견제: 일본 기업들은 완제품 조립 기술이나 일부 부품 가공 기술은 비교적 쉽게 이전해 주었지만, 무브먼트 설계나 핵심 부품 제조와 같은 원천 기술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을 지켰다. 그들은 한국이 단순한 생산 기지 역할에 머물기를 원했을 뿐, 경쟁자로 성장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다. 우리가 자체 기술 개발을 시도할 때마다, 은근히 견제하는 움직임도 감지되곤 했다. 때로는 정보 제공을 제한하거나, 공급을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간접적인 압박이 들어오기도 했다.
“기술은 가르쳐주되, 핵심은 넘겨주지 않는다.”
그들의 전략은 치밀하고 계산된 보호주의 그 자체였다..
•당시 시계 공장의 작업 환경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매우 열악했다.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반복 작업을 해야 했고, 특히 시계 조립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었기에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가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하면 된다”는 의지와 열정, “잘 살아보겠다”는 꿈이 있었다. 젊은 여성 노동자들은 잠을 쫓으며 부품과 씨름했고, 기술자들은 늦은 밤까지 공장에 남아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 그들의 땀과 헌신은 단지 시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 제조업의 뿌리를 만든 귀중한 역사였다. 그 시절의 공장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한켠이 뭉클해진다.
성공의 이면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존재한다. OEM 중심의 급성장은 한국 시계 산업에 단기적인 성과를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자체 브랜드의 실종: OEM 생산에 집중한 대가는 브랜드 정체성의 부재였다. 아무리 훌륭한 시계를 만들어도, 최종 소비자에게는 일본 브랜드 이름만 보일 뿐, ‘메이드 인 코리아’의 존재감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는 '만들어주는 공장’ 역할에 만족했고, 브랜드 가치와 마케팅 노하우는 고스란히 외국 기업들의 몫이 되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정성껏 요리해 손님에게 내놓았지만, 사람들은 요리사의 이름은 잊고 식당 간판만 기억하는 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기술 종속의 심화: 무브먼트와 같은 핵심 부품과 원천 기술을 계속 일본에 의존하다 보니, 자체 기술 개발 역량은 성장할 기회를 잃었고, 기술 종속은 점점 더 깊어졌다. 일본 기업이 정책을 바꾸거나 부품 공급을 중단하는 순간,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한국 시계 산업의 독자적 성장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는 결과를 낳았다.
•가격 경쟁력 상실과 후발주자의 추격: 1980년대 후반부터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더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워 OEM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한국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일본 바이어들은 더 싼 생산 기지를 찾아 하나둘씩 한국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우리는 깨달았다. 믿고 매달렸던 OEM이라는 동아줄이, 사실은 썩은 동아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경영의 불안정성: OEM 사업은 본질적으로 ‘주문자 중심’의 구조다. 아무리 기술력과 생산 역량이 뛰어나도, 주문자가 계약을 취소하거나 물량을 줄이면 공장 가동 자체가 중단될 수 있는 수동적 사업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이러한 구조는 장기적인 경영 계획이나 기술 개발 투자를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한국 시계 산업은 불안정한 외줄 타기를 이어가야 했다.
결국 OEM은 한국 시계 산업에 단기적인 성장과 기술 습득이라는 ‘단물’을 제공했지만, 그와 동시에 브랜드 경쟁력 약화와 기술 종속이라는 ‘독’을 남긴 셈이었다. **‘우리 이름은 없는 성공’**은 결국, 기초 없는 모래성과도 같았다.
OEM 중심의 성장 전략은 한국 시계 산업에 빠른 성장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뼈아픈 한계와 실패도 남겼다. 이 경험은 단지 시계 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 제조업 전체에 값비싼 교훈으로 남아 있다.
•기술 자립 없이는 미래도 없다: 아무리 뛰어난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핵심 기술을 외국에 의존하는 한 진정한 산업 발전은 불가능하다. 단기적으로는 어렵고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원천 기술 확보와 자체 기술 개발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과 투자가 필수적이다.
•브랜드가 곧 경쟁력이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만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그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브랜드는 단순한 로고가 아니라, 소비자와의 신뢰이자, 기업 철학과 스토리를 담는 그릇이다. 브랜드 없는 제품은 결국 시장에서 ‘기억되지 않는 이름’이 된다.
•‘빨리빨리’보다 ‘멀리멀리’: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장기적인 비전과 지속적인 투자가 중요하다. OEM은 눈앞의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그 이익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선 안 된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시대다.
•‘만드는 기술’을 넘어 ‘파는 기술’로: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제대로 알리고 팔 수 없다면 무의미하다. 독자적인 마케팅 전략, 유통 채널 확보, 소비자 트렌드에 대한 민감한 감각이 필요한 시대다. 이제는 ‘기술력’만이 아닌 ‘시장력’이 경쟁력이다.
그렇다면 OEM은 이제 완전히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과거의 단순 하청 구조는 한계를 드러냈지만, 오늘날의 OEM은 보다 진화된 협력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ODM (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제조업자 개발 생산): 생산자가 제품의 개발과 디자인까지 주도하여 주문자에게 공급하는 방식이다. 생산자의 기술력과 창의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부가가치도 높다.
•JDM (Joint Development Manufacturing, 공동 개발 생산): 주문자와 생산자가 제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협력하여 함께 제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양측의 강점을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며, 진정한 파트너십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디자인 OEM/스마트 OEM: 생산자가 특정 디자인 역량이나 스마트 기능 등 특화 기술력을 바탕으로, 주문자의 니즈에 맞는 맞춤형 제품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특정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수직적 하청 구조가 아닌, 주문자와 생산자가 상호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상생의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다. 한국 시계 산업 역시 과거 OEM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새로운 협력 모델과 자립형 전략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키워가야 한다.
OEM의 시대는 저물었을지 모르지만, 그 시절 우리가 흘렸던 땀과 눈물, 그리고 값진 교훈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 교훈은 오늘 우리가 ‘한국 시계’라는 새로운 꿈을 꾸는 출발점이며, 다시 한번 세계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과거를 직시할 때, 미래가 보인다.
OEM이 남긴 발자국 위에, 우리는 이제 ‘우리 이름을 건 시계’를 새겨 넣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