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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론산바몬드 Feb 01. 2023

겨털을 뽑은 사연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학생이 교사를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교사도 마찬가지로 학생들을 닮는다. 초등학교 교사는 점점 유치의 정점을 달리고, 중학교 교사는 뭐든 대충 하고, 고등학교 교사는 지독히도 말을 안 듣는다. 


초중등 교사들이 같이 연수를 받는 현장에 그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맨 앞자리에 앉아 필기까지 열심히 하는 사람은 초등학교 교사다. 중학교 교사는 뒷자리에 앉아 졸고 있다. 아예 들어오지도 않고 밖에서 담배만 피우는 사람은 고등학교 교사다.


예전에 근무했던 고등학교 주변에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가 붙어 있는데 한 해 두 번씩 배구시합을 했다. 초등교사들은 시간도 되기 전에 선수와 응원단이 모두 모여 연습을 했다. 중학교는 선수만이 시합 직전에 도착했고, 고등학교는 아예 선수도 제대로 참석을 안 했다.


비단 교사만이 아니다. 장학사도 마찬가지다. 옆자리에 앉은 초등 장학사는 종종 실없는 소리를 많이 한다. 유치한 농담이 일상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오늘은 기분이 안 좋네요."

"그럼 거울 보지 마세요."

분명 성희롱성 발언에 대꾸할 가치도 없어 보이는데 사무실 사람들은 까르르 웃음을 던진다. 유치한 농담은 분명 힘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아내에게서 '엄·근·진'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이참에 나도 실없는 소리를 던져볼까 싶다. 분위기만 좋아진다면 유치해지는 것쯤이야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날 저녁 일찌감치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데 아내가 슬금 다가와 옆자리를 파고들었다. 데워진 자리를 비키기 싫어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데 아내가 한마디 던진다.

"곁을 줘요."

그래서 겨털 한 올을 뽑아 건넸다. 아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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