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Royal Columbia Hospital 방문-HSG x-ray
언제나처럼.
나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생리는 터졌다.
나는 가끔 내가 ‘여자’가 맞는 걸까.. 싶기도 하다.
PCRM에서 보내준 HSG (Hysterosalpingogram / 나팔관 조영술) booking instruction 대로 생리 첫째 날 나팔관 조영술 (HSG x-ray)을 먼저 예약을 하기로 했다.
X-RAY 촬영이 가능한 병원 리스트는 총 6개였는데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인 New westmenster에 있는 Royal Columbian Hospital로 결정했다.
우리 집이랑 가까운 것도 좋았지만 캐나다 BC주에서 가장 큰 병원이 믿음이 갔다.
물론 한국 대형 종합병원들과 비교한다면 천지차이겠지만 나름 이 지역에서는 응급실 (Emergency Centre)을 보유한 꽤 체계적인 대형병원이다.
6개 병원 중 한 곳, Private 전용 도 있었는데 이용료는 한화로 약 85만 원 ($850). MSP를 보유하고 있으면 무료인데 굳이 선택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Hi, How are you. I am a patient of Dr. Ken (PCRM 내 담당의). Today is my first day of my period and I would like to book HSG”
‘와라! 그 어떤 질문들도 다 대답해주마!’
내 전투태세와는 다르게 전화를 받은 언니는 매우 친절했다.
그리고 혹 내가 못 알아들을까 봐 천천히 처방전 속 인적사항들을(전문의 번호, MSP번호 등) 확인했고 내 생리가 끝나는 날 기준 2~3일 내로 HSG X-RAY 촬영할 수 있도록 예약도 바로 잡아주었다.
10월 12일. HSG X-RAY 촬영 당일.
아침부터 긴장한 탓에 원래 예약시간보다 2시간이나 빠른, 아침 9시에 도착했다.
병원 근처에는 상점들도 많이 없고 흔히 찾을 수 있었던 Life Labs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병원 입구를 찾는데만 20분이나 걸렸다.
힘들게 찾은 병원 입구로 들어가니 무지개다리처럼 목적지가 적혀 있는 다양한 줄들이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바닥에 그려져 있었다.
내가 가야 하는 Medical Imaging Centre는 파란색 라인이라 그 길을 따라 쭉 걸어갔다.
병원 내부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종합 병원이라 하면 수많은 환자들, 방문객들, 의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게 기본인데..
이곳은 (응급실은 물론 다르겠지만) 스페셜 닥터의 처방을 받은 환자들만이 방문하는 곳이라 그런지 정말 조용하고 쾌적했다.
Medical Imaging Centre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니 3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접수하면 금방 내 차례가 오겠구나.. 하며 처방전을 리셉션 언니에게 전달해줬는데, 언니가 대뜸,
“너 소변 검사 (임신 테스트) 했어?”라고 묻는 것이다.
나팔관 조영술을 받기 전에 임신 테스트를 먼저 하고 오라고 안내문구가 있긴 했지만 시중에 파는 임신 진단 키트로도 되는 줄 알았다.
PCRM 환자 포털에 첨부되어 있던 Life Labs 소변 테스트 (임신 테스트) 처방전이 바로 이를 위해 있었다는 것을 나는 꿈에도 몰랐다.
“집에 있는 임신진단키트로 확인했는데, 음성이었어. 자 여기..”
“안돼. 소변검사로 받아야 해. 너 라이프 랩 처방전 못 받았어?”
“받았어… 여기..”
“아니. 여기 보여주는 게 아니라 네가 여기 오기 전에 Life Labs에서 소변검사를 먼저 받고 왔어야 해. 그전에는 HSG x-ray 못 받아.”
‘쿵’
현재 시간 오전 10시 50분. 예약시간을 10분 남기고 듣는 절망적인 소리.
이를 미리 확인하지 않았던 나에 대한 실망과 분노의 감정들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여기 오면서도, 그 흔한 Life Labs을 못 봤는데.. 나가서 찾으면.. 1시간..’
‘접수 후 기다리는데, 1시간 이상.. 그날 바로 결과도 안 나오는데..’
‘병원은 4시면 문 닫는데..’
‘그럼, 난 오늘 나팔관 조영술 못 받겠네..’
‘다음 생리 첫째 날 HSG X-RAY 예약을 다시 잡아야 하는 거야..???’
그동안 보고 겪었던 캐나다 의료시스템을 매우 잘 알고 있던 나는 당연히 ‘오늘 공쳤구나’라고 생각했다.
막막해지던 그때. 그 언니는 나에게 빛과 같은 말을 해주었다.
“병원 1층에 Life Labs 있으니까, 그거 들고 소변검사 먼저 받아. 한 시간 정도 지나면 결과도 나올 거야. 점심시간 지나서 1시 반에 다시 여기로 오면 우리가 결과를 받을 수 있으니 먼저 거길 갔다 와”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Thank you!!’
그렇게 찾은 병원 안 Life Lab은 말 그대로 생사가 오고 가는 전쟁터였다. 병원에 사람들이 왜 없을까 했는데.. 알고 보니 여기 다 모여 있는 거 같았다.
리셉션 언니가 그렇게 목이 터져라 사람을 찾는 것을 처음 봤다. 아니, 캐나다에서는 처음 봤다.
나는 대기표를 뽑고 구석에 앉아서 조용히 내 차례를 기다렸다.
전투적인 언니들의 노력으로 생각보다 사람들은 빨리빨리 빠졌다. 나는 약 30분 정도 기다린 뒤 코로나 안전 문진표를 간단하게 적고 컨테이너를 받고 테스트 후 나왔다. 시간은 12시. 앞으로의 길고 긴 1시간 반의 시간… 어디 갈 곳도 없고 입맛도 없고 해서 난 그냥 무작정 기다렸다.
그리고 미리 챙겨 온 진통제 한 개를 12시 반에 먹었다.
나팔관 조영술시 조영제를 자궁 안으로 직접 투여하므로 생리통과 같은 진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IBUPROFEN 계열의 애드빌이나 진통제를 1시간 전에 먹고 와도 된다는 안내문을 받았는데 안 먹으려고 버티다가 결국 먹었다.
모든 건 다 처음이라.. 안내문에 적혀 있는 대로 가는 게 제일 안전해 보였다.
시간 맞춰 진통제를 먹고, 약속한 시간에 맞춰 다시 이미징센터로 갔다. 다행히 내 소변검사 결과가 알아서 잘 들어갔던 거 같다.
재접수 후 잠시 기다리니 금발의 쇼트커트를 한 간호사 언니가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 언니는 내가 여태껏 캐나다에서 만난 사람들 중 제일 친절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간호사들은 다 친절 패치 교육을 받는 것이 확실했다. 플러스 스마일 장착까지.
그 쇼트커트 금발 언니는 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시종일관 웃으면서 친절하게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생리통 같은 진통을 살짝 느낄 수 있으니 진통제를 먹고 왔는지, 내 마지막 생리 시작 일은 언제인지, 등등.
그리고 산부인과에서 주는 문진표를 주고 충분한 시간을 줄 테니 읽어 보고 적어달라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임신을 위해 얼마 동안 노력해 왔는가.. 였다.
우리는 3년이지만 그 누군가는 그 이상을 적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면서 슬퍼졌다.
그 후 친절한 간호사 언니는 나에게 3번이나 검사 내용과 방법들에 설명해 주었고 이제는 이 과잉친절이 불편함을 느낄 때쯤,
내 차례가 와서 환복 후 검사실로 들어갔다.
‘굴욕 의자는… 앉기 싫은데… 어라? 어디 있지??’
방사선 표시가 붙은 검사실에 들어가자, 산부인과 문턱의 최종 보스 ‘굴욕 의자’가 보이지 않았다.
‘산부인과가 아니라 메디칼 이미징센터라 그런가… 다른 것도 찍을 수 있으니까..’
내가 당황하는 것을 0.00001초 만에 느낀 친절 간호사 언니는,
“너 산부인과 의자 생각했지? 사실, 우리도 그거 너무 싫어. 사람들은 다 거기 앉는 거 불편해하잖아. 그래서 우린 다른 방법으로 찍을 거야. 걱정 마.”
만국 공통, 산부인과 의자는 모든 여자들이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을 다시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조금은 다른 (?) 자세로 눕게 해 주었는데 두 발을 붙인 채 무릎을 양 옆으로 벌리는 나비 자세로 누웠다.
엉덩이에는 쿠션을 많이 넣어주어서 불편하진 않았지만 그 중요(?) 부위는 너무 민망했다.
다행히도 치과에서 쓰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초록천으로 가려주었지만 낯선 장소 어색한 포즈.. 모든 것이 불편했다.
나의 이 긴장감을 또 0.000001초 만에 느낀 친절 간호사 언니는,
“ 긴장하지 마, 곧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실 거고 금방 끝날 거야. 네가 원하면 내가 손을 잡아 줄 수 있는데 원하니?”
나는 단 한순간도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미드에서나 나올 법한 큰 눈에 약간 곱슬머리를 한 젊고 잘생긴 남자 선생님이 의사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두른 채 등장하셨다. 그리곤 또 검사 과정을 설명해주셨다… 이미 3번 들었는데 또… 여기는 최소 5번은 설명해줘야 하는 법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한국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실시간으로 약물이 투여되는 것을 볼 수 있게 모니터가 오른쪽에 설치되어 있었다. 가느다란 관으로 조영제를 투여할 때, 따뜻하고 묵직한 무언가가 들어오는 느낌이었는데, 진통제를 먹어서 그런지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검사가 끝난 뒤, 피가 조금씩 조영제랑 나올 수 있는데 그건 일반적이지만 출혈이 1~2일 이상 계속 지속되면 응급실로 바로 오라고 했다.
난 내 나팔관이 정상인지 괜찮은지 궁금했지만, 결과는 패밀리 닥터나 스페셜 닥터한테 들으라고 해서.. 옷을 다시 환복하고 나왔다.
‘좀 말해주면 덧나나….’
오늘 촬영한 이미징 파일은 원하면 시디로 받을 수 있는데, 물론 이것도 무료이다.
이 자료는 나중에 한국에 가게 된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시디로 구워달라고 했는데 매우 선견지명이었다. 이제 다 끝났구나.. 했던 참에 그 숏 컷 금발의 친절한 언니가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HSG X-RAY 하고 나면 조영제로 자궁을 한번 깨끗하게 해 주기 때문에 이후에 자연 임신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러니 내일부터 계속 시도해봐 봐. 넌 아직 충분히 젊으니 분명 예쁜 천사가 찾아 올 거니까 포기하지 말고 힘내”
말이 갖는 힘이 이렇게도 크고 따뜻하고 위안이 될 수 있다니.. 감동이었다.
과잉친철이라고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진심으로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그 마음에 그동안 캐나다 의료 시스템으로 상처받고 실망했던 나를 꾸짖게 되었다. 물론 시스템이나 절차는 느릴 순 있다. 하지만 환자를 대하는 의료인들의 마음은 다를 수가 없다는 점. 다시 한번 새삼 느꼈다.
X-RAY 촬영을 마치고 병원을 나서자 3시 반.
아직 배가 묵직하고 약간의 생리통을 느끼고 있던 찰나에 반차를 내고 나를 마중 나온 짝꿍이가 문 앞에 있었다.
‘고생했어요...’
말도 문화도 다른 이곳. 맘 터 놓고 이야기할 친구들도 옆에 없어 외로운 이 힘든 이민생활.
그래도. 내 짝꿍이 이렇게 있으니 같이 버티면서 살 수 있는 거지..
아침부터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
어서 우리에게 나와 짝꿍을 반반 닮은 예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주면 좋겠단 생각을 하며
오늘도 든든하게 저녁을 먹었다.
다음.
[Brooke Radiology Kingsway 방문기-복부 초음파]
‘안돼,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안돼..! 방광아 제발…조금만 더 견디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