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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carver Jun 25. 2021

낯선 이, 그리고 낯선 몸

낯선 이와 공유하는 몸의 변화

임신, 이 기간에 일어나는 몸의 변화 혹은 고통은 '아주' 많지만, 백이면 백의 산모가 모두 다 자신만의 증상/빈도/강도를 선택적으로 겪는다. 


내 몸 인듯 내 몸 아닌, 타자와 몸을 공유하는 일. 

아이는 나와 내 짝의 유전자를 빌어 내 몸에서 자라나지만, 나는 아니다. 

내 안에서 존재하는 또 하나의 생명체이고, 곧 타자로 분리될 미지의 존재이다.

누군가와 나의 몸을 일시적으로 공유하고, 내가 가진 것들을 양분삼아 내 안에서 길러내는 일. 

당연히 내 몸도 평소와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임신 기간동안 겪었던 증상들은, 내가 상상했던 것이나 다른 산모들에 비하면 상당히 견딜만한 것이었다. 이 기간의 내가 겪었던 증상, 내 몸의 변화를 간단히 정리해 본다. 


# 입덧은 먹덧으로

임신의 가장 초기 증상인 입덧. 다행히 나는 심한 입덧이 없었다. 모두가 축복이라고 말하는 먹덧. 그러나 못 먹는게 하나 있었으니 고기류이다. 한 달 정도는 속이 울렁거려서 즐겨 먹던 삼겹살, 스테이크는 냄새도 못 맡았고, 냄새가 덜한 수육 정도를 야채에 쌈싸서 간신히 먹었다. 주로 과일을 엄청 먹었는데, 비싼 과일만 땡겼던지라 살림살이가 휘청했다. 속이 비면 즉시 미식거렸기에 이 때는 속이 비는 것이 두려워 허겁지겁 뭔가를 찾아먹는 일이 빈번했고, 평소 안 먹던 매운 것과 찬 것이 땡겼다. 먹덧으로 인해 임신 초기에 몸무게가 급증했다. 먹덧이라고는 해도 임신 초기에는 전반적으로 컨디션 저하되는 증상이 있었다.  


# 몸이 알아서 피하는 카페인

임신 초기가 지나고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면 대부분은 먹는 것에 대해서는 예민함이 줄어든다. 날 것, 큰 생선 등 공통적으로 피해야할 음식들을 제외하고는 가리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 신기한 것은 커피에 대한 몸의 반응이다. 하루에 필요한 수분의 양을 커피로 채웠기에 하루 1잔의 커피는 마셨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시면 속이 부대껴서 커피를 끊었고, 카페인이 없는 루이보스 티를 마시기 시작했다.  


# 붓기

임신 중기부터 손과 발의 붓기가 꽤 있었다. 초기에는 약간 답답하게 결혼반지가 맞을 정도였는데, 중기를 지나기 시작하니 반지를 아예 끼워넣을 수도 없었다. 내 손발이 이렇게 두터웠나 싶을 만큼 손가락 발가락이 통통하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기존에 신던 신발이 모두 안 맞거나 불편해서, 니트 운동화였던 스케쳐스 한켤레만 신기 시작했고, 그나마도 불편해서 많이 부은 날은 접어 신었다. 늘 부었다고 생각했는데 임신 후기로 넘어가니 손발 붓기에 더해 피가 쏠리고 간지러움이 더해졌다. 손발에 핏줄이 울퉁불퉁 올라오기 시작했다. 


# 두통과 비염

여러가지 낯선 증상이 찾아와 몸이 괴로웠던 반면에 없어져서 좋았던 것이 있으니, 두통과 비염이다. 평소 두통이 빈번해서 타이레놀을 자주 먹었기에 임신 기간에 두통이 제일 걱정이었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 두통과 타이레놀 없는 임신 기간을 보냈다. 비염 역시 심해서 기온이 내려가는 아침나절에는 늘 코를 풀며 지냈는데, 아기와 나의 체온으로 몸이 따뜻해져서 그랬는지 겨울을 비염 없이, 그리고 추위 없이 보냈다.


# 35주에서 36주. 

이 시기에 식중독에 한번 걸렸다. 심한 설사와 폭풍 구토를 경험한 후, 그 날 저녁에는 아랫배가 한시간 주기로 생리통처럼 아팠고, 그 통증으로 인해 매시간 잠에서 깨어야 했다. 다음날 병원에 갔더니 주기적인 자궁 수축이 있어 병원에 입원하고 꼬박 20시간을 수액 링겔을 맞으면서 태동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조산기는 가셨으나, 딱 이 시점부터 몸 상태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몸이 훨씬 더 무거워졌고, 그간 천천히 오르던 몸무게가 급상승 했으며 배가 심히 부르고, 속이 수시로 아리고 쓰리고, 밤에는 잠들기가 어려웠다.   

막달의 배부름은 그 이전의 배부름과는 확연히 다르다. 배는 이전에도 불렀고, 지금도 부르지만 그 안에 꽉찬 농밀함의 정도가 달랐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불편할 정도로. 마지막 한 달 아기가 급격하게 체중을 불리는 시기라 그런지 뱃 속이 꽉찬 느낌. 아기가 차지하는 공간의 증가로 인해 위에서 끊임 없이 신물이 치고 올라온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목과 가슴이 타는 듯한 통증에 일어나 앉기를 여러번 했다. 물도 마셔보고 우유도 마셔보고 속쓰림은 가시지 않아 불면의 밤을 보내곤 했다.   


# 그 외의 기타 등등.. 

피로감, 나른함, 졸림, 이것은 만성적..  

새벽에 2,3번씩 빈번하게 깨서 화장실 방문.. 

임신 때 먹는 각종 철분제, 영양제들로 인해 난생 처음 변비와 속쓰림..

옆구리, 갈비뼈, 아랫배, 골반 통증 등등.. 아기의 성장과정에 따라 변하는 아픈 곳들..

만삭에 가까워 지면서 빈번해지는 배뭉침, 나의 경우에는 배에 쥐가 난 것 같은 느낌..

만삭에 가까워 질수록 아주 중량감 있게 느껴지는 무게감. 갈수록 심해지는 손목, 무릎 통증..


그 외에도 여러 증상들이 많았지만, 그 몇 달의 기간이 지나는 새에 기억에서 지워졌다. 열 달의 임신기간은 정말 이 몸이 내 몸인가 싶을만큼 평소 겪어보지 못했던 여러가지 변화를 겪었고, 빈번하게 아프고, 괴로웠고, 또 대개는 무거웠다. 


때때로 우리의 아기인데, 왜 나만 아픈가 억울한 심정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짝궁이 옆에서 든든히 지켜주고, 출퇴근을 시켜주고, 나의 고통을 들어주고, 덜어주려 애를 썼기에 어려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차후에 더욱 어려운 시간이 올 것이란 사실은 그저 들은 풍월로만 알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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