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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수 Oct 28. 2022

스트레스는 깨진 계란

얼마 전 갑자기 번뜩여 순식간에 써 내린 글이다. 글의 화자를 나라는 세계의 왕으로 추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내가 처한 현실 아닐까. 어쨌든 잰걸음으로 더디지만 과거의 나와 계속해서 이별 또 이별 중이다. 




살면서 얻은 교훈은 스트레스는 다루는 대상이 아니란 것이다. 나도 다루려 했고 다뤄도 봤다. 스트레스는 그냥 버리는 게 맞다.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하지만 쉽게 버리지 못한다. 연결성 때문이다. 우리 사회 많은 부분이 이어져 있기에 스트레스도 이와 함께 연결되어 있다. 꽤나 긴밀한 만큼 떼어 내는 것이 당연히 어렵다.


한편 스트레스의 입장에서 보면 꽤 살기 좋은 세상이다. 우리가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려면 그것이 스스로 애석해지게 만들어야 한다. 결국 연결을 끊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스트레스 자체를 설득하거나 이기려 들 필요가 없다. 스트레스는 이 연결 속에서 느긋하게 버티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마치 전쟁에서 보급로를 차단하듯 스트레스와 연결된 얽힘을 하나씩 제거하면 스트레스는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스트레스는 연결성을 제거해서 없애야지 직접 교류하려는 순간 스트레스는 더 발현될 뿐이다. 연결성이 인과관계를 의미하나 보다 싶겠지만, 전하고픈 핵심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는 일종의 깨진 계란처럼 여겨라. 상태가 양호하면 막상 그냥 버리기 아깝다 보니 일부라도 살려 식재료로 쓰고 싶을 것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와 더욱 결속된다. 스트레스의 영향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격이나 다름없다. 버려야 한다. 원하는 것이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맞다면.


깨진 계란과 같다고 비유했을 뿐 엄밀히 깨진 계란도 아니지 않나. 그러니 미련 없이 끊고 내다 버려야 한다. 괜히 엮이지 말고 신경을 꺼버려라. 그러면 스트레스는 저절로 스스로 죽어나갈 것이다.


생각이야 누구나 하지 실행이 힘든 법. 여기서 정말 어려운 것은 이 연결을 끊어내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막막한 경우일 것이다. 사실 이 연결이라 함은 대부분 사람이 만들고 또 지우는 인간일의 결과다. 결국 핵심인자의 상당 부분은 사람이고, 그러니 연결성이란 사람과의 관계성 즉, 인간관계다. 


긴밀한 인간관계, 이해가 얽힌 관계는 쉽게 끊기 어렵다. 끊어낼 수가 없으니 끝내 스트레스와 공존하길 각오한다. 이런 생각은 어떻게 보면 긍정적 사고이자 지혜로운 대처처럼 보인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다. 침략당했음을 외면하지 말자. 일찍 막았다면 다행이지만 늦었다고 해서 계속 당할 것인가. 뭐가 좋다고. 


답은 정해져 있다. 본질적으로 다뤄서 해결될 대상이 아닌데 다루려 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키운다. 굶겨라. 이를 위해 각종 얽힘을 제거해야만 한다. 이것은 최선도 아니다. 그냥 전부일뿐이다. 할 수 없다면 스트레스가 겹겹이 쌓인 것이다. 쉬운 것부터 풀어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스트레스의 숙주로 살뿐이다.



Cover Image by CraftyPeas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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