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광을 건네는 사람
경험은 저장이 아니라 유통이다. 오래 묵힌다고 저절로 가치가 되지 않는다. 혼자 간직하면 기억으로 남고, 꺼내 놓아야 비로소 기술이 된다. 퇴직 이후에야 그 사실이 또렷해졌다.
성과로 환산되던 시절의 경험은 늘 보고서의 끝에 붙어 있었고, 숫자와 그래프에 가려 목소리를 얻지 못했다. 조직은 효율적으로 움직였지만 경험은 언제나 요약본으로만 존재했다. 그렇게 디테일은 생략되고 맥락은 삭제되었다.
직함이 사라지자 이상한 변화가 찾아왔다. 설명해야 할 대상이 줄어들었고, 증명해야 할 이유도 옅어졌다. 그제야 경험이 성취가 아니라 경로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넘어졌는지, 왜 돌아 나왔는지, 무엇을 붙잡고 다시 일어섰는지. 그 경로는 성공담보다 훨씬 길었고 실패담보다 훨씬 구체적이었다. 경험을 꺼내 놓는다는 것은 결과를 자랑하는 일이 아니라 선택의 흔적을 펼쳐 보이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지름길을 알려주는 대신, 나의 우회로를 조심스럽게 공유하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그 우회로에는 판단의 망설임도, 타이밍을 놓친 아쉬움도 함께 담겨 있었다. 경험은 더 이상 나만의 자산이 아니라, 누군가의 판단을 돕는 경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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