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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는 이미 시작됐다

by UX민수 ㅡ 변민수

줄다리기라고 했지만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싸우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밀리고, 어떤 사람은 버티고, 어떤 사람은 판을 뒤집는다.


전투의 양상은 다르지만 패턴은 있다. 그리고 그 패턴은 생각보다 선명하다. 당신의 오늘 하루를 떠올려보면, 아마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잠식형 — 어느 순간 나만의 시간이 없어졌다


처음에는 야근이 가끔이었다. 그러다 가끔이 자주가 됐고, 자주가 당연히 됐다. 퇴근 후 8시간은 어느새 씻고, 먹고, 쓰러지는 데 다 쓰인다.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할 여백이 없는 게 아니라, 그 여백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다.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을 먹어 들어가는 방식은 늘 이렇게 조용하다. 서서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들을 달고, 하루씩. 드라마틱하지 않아서 더 위험하다. 어느 날 문득 내가 뭘 좋아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잠식이 꽤 깊이 들어온 것이다.



도피형 — 쉬어도 쉰 것 같지 않다


반대편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 해야 하는 일에서 도망치듯 하고 싶은 일로 뛰어드는 사람.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린다.


이 시간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해야 하는 일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피한 시간만큼 해야 하는 일은 쌓이고, 쌓인 무게는 하고 싶은 일의 시간마저 오염시킨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이유다. 줄을 놓은 게 아니라 그냥 손을 펴고 있는 것이다. 줄은 여전히 반대편으로 끌려가고 있다.



전환형 — 좋아서 시작했는데 일이 됐다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해야 하는 일이 되는 경우가 있다. 글쓰기가 취미였는데 원고 마감이 생겼다. 사진이 좋았는데 클라이언트가 생겼다. 퇴근 후 혼자 만들던 것이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이 전환은 축복처럼 보이지만 함정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이 공적 의무로 편입되는 순간, 그 일은 더 이상 같은 일이 아니다. 좋아서 하던 것에 책임이 붙고, 기대가 붙고, 마감이 붙는다.


줄다리기의 팀이 바뀐다. 이걸 인식하지 못하면 번아웃이 오고, 인식하면 다음 스테이지가 시작된다. 전환은 끝이 아니라 분기점이다.



역전형 — 부업이 주업이 됐다


전환형의 다음 단계가 역전형이다. 그 분기점을 잘 통과한 사람들에게 역전이 일어난다. 사적 영역에서 키운 것이 공적 구조 자체를 흔들어버리는 순간. 주말마다 만들던 것이 생계가 됐고, 개인 브랜드가 퇴사의 조건이 됐다.


위임을 배우고, 시스템을 만들고, 해야 하는 일의 총량 자체를 줄여나간다. 해야 하는 일의 정의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이 유형은 줄다리기에서 이긴 게 아니라, 줄의 방향을 바꾼 사람들이다. 게임의 규칙을 건드린 것이다.



설계형 — 루틴이 있고, 이유도 안다


마지막 유형은 가장 드물고, 어쩌면 가장 오해받는다.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움직이는 사람. 아침 시간을 사수하는 이유가 있고, 주말을 쓰는 방식에 원칙이 있고, 어떤 요청을 거절하는지에 기준이 있다.


이들은 의지가 강한 게 아니라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의지는 소모되지만 구조는 작동한다. 갓생, 미라클 모닝, 루틴, 이 키워드들이 계속 유행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설계형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름은 몰라도, 방향은 알고 있는 것이다.




다섯 유형 중 어디에 있든, 줄다리기는 멈추지 않는다. 잠식당하고 있어도, 도피하고 있어도, 전환의 문턱에 서 있어도. 줄은 항상 팽팽하다. 차이는 그것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다. 그리고 그 차이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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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UXer · 멘토 · 저자 · Design with capital D · 자기계발 · 갓생 · UX Creator · UX Cartograp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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