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우 Aug 29. 2022

택배기사가 대학교 총장실 문을 두들긴 후 벌어진 일

층별 배송이 아닌, 1층 배송인 기숙사는 한꺼번에 휴게실에 택배를 모아두고 사진을 찍으면 누군가 택배를 찾지 못할 때 찾아주기도 쉬웠다.

그런데 문제는 기숙사에는 CCTV가 없다는 거였다.

누군가 물건을 잘못 가져가거나 훔쳐 가서 없는 경우에는 가져간 사람이 도로 갖다 놓지 않는 한 찾을 길이 없었다.

그 때문에 기숙사에는 매년 10건 이하로 택배 분실이 일어나는 실정이었다.

만약 기숙사 건물 1층 휴게실에 CCTV가 있고 모든 택배를 그 앞에 둘 수 있다면 어떨까?

일을 하면서 종종 이런 상상을 했다.


휴게실에 CCTV가 있어서 그 앞에 모든 택배를 두면 간혹 학생들이 잘못 가져가는 택배도 잡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도난 예방 효과도 있을 터였다.

무엇보다 휴게실에 CCTV가 생기면 학생들의 안전에도 도움이 되었다.

애초에 다른 건물에는 다 있는데 학생들이 가장 안전해야 할 기숙사에만 CCTV가 없다는 것도 조금 이상했다. 한번 두자고 해볼까?

가끔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날그날 하루치 배달을 처리하기 급급해 한동안은 상상만 하고 말았다.


그러다 분실 사건을 한 번 겪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데 어떡하죠”

전화 온 학생의 애타는 목소리에 나도 마음이 불안해졌다.

급한 건만 처리하고 바로 기숙사로 달려갔는데, 정말 내가 두었던 그 자리에 택배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은 ‘분실된 것 같다’는 전화를 받고 물건을 찾아주거나 한 일은 있어도 진짜 물건이 분실되는 일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가서도 택배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내 기억이 아무리 택배를 제대로 배송했다 한들 없어진 물건은 없어진 것이었다.

고객의 탄식에 마음이 아파왔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당장 고객에게 해결해줄 수 있는 길이 없어 그 물건의 금액을 물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물건이 없어진 걸 알아채기라도 한 듯 그날 대학교 신문에 ‘택배 분실 사건’에 대한 비판 기사가 났다.

택배를 쌓아두는데 경비 아저씨가 이리 좀 와보라면서 기사를 보여준 것이다.


“분실 사건 많아서 요즘 택배 문제 많다고 학생들이 기사까지 썼어요. 앞으로 분실 안 되게 조심 좀 해줘요.”

안 그래도 택배 하나가 없어졌다는 소식에 마음이 불편한 차에 그런 기사까지 보게 되니 마음이 몇 배는 더 불편했다.

대학교에 들어오는 여러 택배사가 있고 CJ대한통운만 해도 나 외에 두 명의 택배기사가 학교에 들어오니 어디서 분실 사건이 발생한 것인데, 나까지 분실 사고가 생겼으니 일이 커지는 것 같아 등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 물건을 놓아둔 기억이 있는데, 차라리 기억이 선명하지 않고 내가 잃어버린 게 분명하다면 마음이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는 내 일을 제대로 했는데 결국 고객이 불편한 일이 일어났고, 내 선에서 그걸 통제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안 좋았다.

다행히도 다음 날 없어진 택배를 찾았다는 학생의 전화를 받았다.

누가 자신의 택배로 착각하고 가져갔다가 다시 돌려놓은 모양이었다.

하루 동안 마음을 졸였던 나는 안도가 되면서도 조금 억울해졌다.

기숙사에 CCTV가 있었다면 고객도 나도 하루 동안 불안에 떨 일이 없었을 것이다.

결정권자가 누구인지도 아직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기왕 바꾸겠다고 결심한 거 가장 이상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게 옳았다.

“기숙사에 CCTV를 설치하게 해달라고 건의하려면 누구를 찾아가야 해요?”

처음 찾아간 곳은 가장 접근이 쉬운 기숙사감과 경비이었다.

“글쎄요. 우리 권한이 없는데.”

돌아온 것은 무관심한 반응.

“일단 총괄하는 게 총무과니까 거기 얘기해 보든지 해요. 아님 뭐 총장님이라도 찾아가시든가.”

반 농담으로 덧붙이는 경비 아저씨의 말에 나는 힌트를 얻었다. 

그래. 총장님께 직접 얘기해 보자.



안녕하세요 총장님

OO구와 OO대를 담당하고 있는 CJ대한통운 김희우 기사입니다

OO대 기숙사를 관리하는 사감과 경비요원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권한이 없다고 해, 주제넘지만 여러모로 알아보다 하는 수없이 총장님에게 감히 이 글을 올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어제 OO대 신문을 보고 택배 도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연도에 기숙사에서 택배 분실사고가 4건이나 발생했다고 들었습니다

계속적으로 분실사고가 일어난다면 학생들도 기사들도 마음이 아프고 신뢰가 깨지게 됩니다

한편 우려로는 택배를 잃어버린 일부 선량한 학생들의 순간적인 보복심리로 인하여 CCTV가 없다는 걸 악용해 다른 학생의 택배를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학생이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가 절도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듭니다. 그래서 총장님에게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기숙사 1층 휴게실에 CCTV를 2~4대를 설치해 주시길 바랍니다. CCTV가 좌우로 하나씩만 있어도 범죄 발생 환경을 제한하고, 학생들이 신뢰할 수 있는 다용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CCTV가 절도와 범죄를 예방한다는 논문도 많이 발표되어 있고 교육 환경적으로도, 학생들의 편안한 시설로서도 기숙사 휴게실이 학생들이 믿고 안심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부디 한 사람의 소중한 물건도 사라지지 않고 억울한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OO대 택배사 대표로 총장님께 이 글을 올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J대한통운 김희우 올림


나는 편지를 들고 총장비서실을 찾아갔다.

마침 비서실장이 계셔서 사정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편지는 내가 잘 전달하겠네.”

그 편지가 정말 잘 전달이 되었는지 며칠 후 기숙사에 CCTV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그 후 분실 사건은 물론이고, 택배를 못 찾겠다는 전화조차 사라졌다.

그야말로 분실률 0%를 기록한 것이다.

CCTV 설치 후 학생들은 ‘누군가 내 물건을 가져가고 싶어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믿음이 생겨 물건이 당장 보이지 않아도 찬찬히 찾아볼 여유가 생긴 것 같아 기뻤다.

이전 14화 미니멀리스트 택배기사의 첫 월급 사용내역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