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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우 Sep 05. 2022

4시간 일하고 500을 버는 택배기사 현실

때는 매일 코로나 확진자 수를 카운트하고 헛기침만 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던 2021년이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택배기사인 나는 하루에 12만 제곱미터의 좁지 않은 구역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각종 외부 이물질과 세균을 묻혀오는 위험인물이었다.


기숙사 건물은 코로나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다 보니 1층에 한꺼번에 택배를 놔두면 되었는데, 대학교의 다른 건물들은 각 강의실 문 앞으로 택배를 갖다 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코로나 확진자 택배기사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매번 대학교 엘리베이터를 관계자들과 같이 타면서 각 강의실 구역 구역을 돌아다니며 택배를 배송하는 것이 학교 관계자에게도 나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장에서 생계인 택배 일을 하는데 코로나 감염은 너무나도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고객 입장에서도 그랬다.

여럿이 드나드는 학교 건물 특성상 코로나 확진자가 나타나면 한 명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건물을 쓰는 사람들 전부가 위험해질 터였다.

학생들은 코로나로 고통받고, 학교는 학교대로 관리 미흡이라는 오명에 시달릴 게 뻔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제안드립니다. 대학 내 각 건물도 기숙사처럼 1층 배송을 시행하는 게 어떨까요?”

나는 각 건물의 경비 아저씨와 경비대장님, 그리고 총무과를 드나들며 몇 번의 미팅을 했다.

다행히 대면 배송도 전부 비대면 배송으로 바뀌어 버린 코로나 시국에 이 제안은 곧바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대학교 각 건물에선 택배를 놓을 위치를 새로 정하거나 층별로 구분해 놓은 택배 보관함을 설치해 모든 건물의 1층 배송을 시작하게 됐다.


‘택배 문 앞 및 요청 장소’라는 통일된 배송 완료 자동 메시지를 지우고,

‘OO 건물 1층 택배입니다’라는 각 건물의 이름을 새로 입력한 자동 메시지를 새로 작성한 뒤 떨리는 마음으로 각 건물의 1층에 배송을 시작했다.

문 앞 배송을 받다가 1층 배송을 하게 되면 고객의 불만이 많아지지 않을까?

약간의 우려를 안고 배송을 시작했지만 다행히 고객 불만은 한 달 동안 단 두 건 밖에 생기지 않았다.

그 두 건도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임을 감안해 선뜻 이해해 주셨다.

그 이후 좋은 일이 생겼다.


대학교에서 택배를 못 찾겠다거나 언제 배송이 되냐는 문의전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그 이유 중 첫 번째로는 모든 건물 1층에 CCTV가 이미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택배를 경비 아저씨와 CCTV 시야 안에 들어오는 1층 택배 구역에 배송하게 되면서 분실률이 현저히 낮아졌다.

기숙사 택배 배송장소에 CCTV가 설치된 후 ‘분실되었다’는 신고 전화가 확 줄어든 것과 같은 원리였다.

1층 택배 배송은 별일 없이 순탄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고객이 불편을 겪을 것이 뻔한 무거운 택배만큼은 코로나 감염 우려를 뒤로하고 고객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럴 때는 미리 전화를 드려 1층에 놔둘 것인지, 아니면 연구실 앞에 놔둘 것인지만 여쭤보고 고객님의 요청대로 해드렸다.


1층 배송 후 고객 불만이 오히려 줄어든 두 번째 이유는 더 빨라진 배달 속도 덕분이었다.

나의 경우 대학교를 첫 번째 구역으로 배송했는데, 터미널에서 대학교로 출발하기 전 고객님들께 배송 출발 문자를 보내고 그 이후 1시간 안으로 대학교 배송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택배가 15개든 150개든 모두 건물 1층에다가 배송을 했기 때문에 매일 각 건물에 가는 시간이 크게 차이 나지 않게 되었고, 늦어도 14시 안으로는 대학교 택배를 모두 배송할 수 있었다.

즉 고객 입장에서는 전과는 비교할 수없이 빠른 속도로 택배가 일찍 오게 되고 택배 분실 위험도 사라지니 1층에 배송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어느 정도 감수해 주시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놀라울 정도로 일도 수월해졌다.

물리적인 배송 시간도 줄고, 문의 전화도 없어지니 다시 가서 택배를 찾아주거나 하는 부가적인 업무시간도 사라졌다.

분류 작업을 제외한 평소에 하루치 배송에 5~7시간이 걸리던, 결코 쉽지 않은 구역이었던 내 구역이 하루에 3~5시간이면 업무가 끝나는 ‘꿀 구역’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단언컨대 만약 내 구역이 처음부터 이런 구역이었다면 이 자리를 함부로?이직하는 기사는 단연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걸까?"

일이 힘들고 정신없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던 광경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전공서를 들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대학생들의 모습이라든지.

'저 학생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기회들이 있을까'

분류작업을 제외한 하루 평균 4시간만 일하면서 5-600만 원을 버는 이 생활은 편하기는 했지만 매일이 똑같아 변화가 없었다.

통장 잔고는 계속 불어났지만 이상하게도 그만큼 내 불안도 커져갔다.

이러다 이 자리에서 철퍼덕 안주하게 될 것만 같았다.

택배 일이 나쁜 일이어서가 아니었다. 너무 좋은 일이라 그랬다.

내 노력 끝에 그렇게 만든 거기는 하지만 업무 시간도 적고, 개인사업자라 다른 사람들과 부딪힐 일 없이 자유로웠다.


12만 제곱미터의 큰 구역이었지만, 몇 개월을 매일매일 가다 보니 나중에는 일이 익숙해져 너무 쉬워졌다.

‘이 일을 계속하다 보면 어쩌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이 일을 더 오래 하게 되지는 않을까?

어쩌면 나는 여러 대리점을 운영하는 택배 소장이 될 운명일지 몰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게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면, 아니면 짐 자무쉬의 영화 <패터슨> 주인공처럼 육체노동과 예술 활동을 병행하며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영혼을 보살펴나갈 수 있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게임이라든지 등산 같은 푹 빠져하는 취미생활이라도 있었더라면.


하지만 나는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을 다 시도해 보지 않은 상태였다.

나중에는 목표했던 1억 원이라는 숫자와 내 통장 잔고의 간극이 좁아질수록 지금 이 일을 그만둘 적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자꾸 꿈틀댔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그 일'을 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과거에 거쳐갔던 수많은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택배도 고소득 직종이지만, 그런 택배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돈을 벌었던 코인 마케팅도 있었고, 돈도 꽤 벌면서 어린 나이에 대표님 소리도 듣던 광고 회사 운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두 가지를 내가 정말 즐기며 했었던가? 아니, 아니었다.

택배 일을 하기 전 아는 대표님으로부터 월 400을 줄 테니 회사에 소속돼 마케터로 일해 달라는 제의도 받았었지만 심신이 지쳐있던 상태라 거절했었다.

택배 일은 마케터 일 보다야 훨씬 수월했지만 어느 정도 이 구역을 좋은 자리로 만들고 보니 이 정도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다른 사람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고 또 다른 자극을 줄 일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방랑벽 습관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자주 본래 하던 질문을 다시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은 뭐였지?”


머리를 싸매고 과거의 기억들을 헤집다 보니 반짝하고 내 머릿속을 관통하는 한 장면이 있었다.

말레이시아의 어느 작은 부족의 마을, 갓 완성된 건물을 살펴보고 있는 20대 중반의 내 모습이었다.

그때 나는 광고 회사 일을 하면서, 봉사 단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봉사 단체 일은 돈이 되는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내 돈과 시간을 써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애정을 가졌던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그 일을 사랑했다.

물론 나중에 후임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순수한 목적의 봉사가 아닌 정치활동을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어 애를 먹었지만, 그전까지는 좋았다.

그렇게 진심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 내가 행복한 일.

이런 생각을 하며, 내 인생의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해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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