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은 유리지갑이라는 말이 있다.
수입이 투명하게 보이는 봉급생활자를 뜻하는 말인데 요즘은 ‘세금을 많이 떼여 실수령액이 적은 직장인의 급여’라는 의미로도 많이 쓰이는 것 같다.
회사를 만들어본 적은 있어도 다녀본 적은 거의 없다 보니 이 말이 실질적으로 훅 와닿진 않았었다.
그런데 택배 일을 시작하고 세후 실수령 월급이 훅 작아지는 직장인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식당 매출이 1억이라고 1억이 고스란히 순수익으로 남는 게 아니듯 매달 통장에 찍히는 돈에서 세금과 기타 비용을 뺀 금액이 비로소 진짜 월급이라고 할 수 있다.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이기에 부가세를 신고해야 한다.
직장인처럼 매달 나뉘어서 월급에서 차감되는 게 아니라 일반과세자 기준, 6개월에 한 번씩 벌었던 돈의 10%를 납부한다.
어쩌면 이 때문에 일반 직장인의 월급보다 택배기사들의 월급이 더 커 보이는 걸 수도 있다.
그런데 일반 과세냐 간이과세냐에 따라 부가세 금액에는 큰 차이가 있다.
21년에는 부가세 법이 개정돼 연 8천만 원 미만의 사업자들은 ‘간이과세’로 분류되어 매출의 1.5%~4%만 내도 되게 되었다(나의 경우에는 20년도 매출이 없어 부가세 신고를 안 한 바람에 매출이 확인되지 않아 21년도 일반과세자에서 간이과세자로 변경을 할 수 없었다).
21년도 전까지는 그 기준이 4,000만 원이라, 대부분의 택배기사들은 6개월에 한 번씩 매출의 10%에 해당하는 목돈을 고스란히 세금으로 토해내야 했다. 월수입이 500만 원이라 치면, 연 수입은 6000만 원, 부가세를 일 년에 두 번 내니 부가세가 한 번 빠져나갈 때마다 300만 원이 빠져나가는 셈이다.
거기에다 매일 운전을 하니 기름값도 만만치 않게 든다.
내 경우 유가보조금을 적용한 기준으로 한 달에 30만 원 정도 들었는데, 잘은 몰라도 출퇴근할 때만 차를 쓰는 일반 직장인보다는 훨씬 많은 금액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직장인의 경우 일할 때 차를 많이 써야 하는 외근 직이라면 보통 회사에서 유류비 지원을 해주니 사실 직장인과 기름값을 비교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그러니 직장인들은 그러지 않는다고 해도, 택배기사들은 벌이에서 분명한 ‘비용’인 기름값을 빼고 계산하는 것이 옳다.
*유가 보조금: 영업용으로 등록된 차량이라면 화물복지카드를 신청할 수 있는데, 화물복지카드가 있으면 유가보조금을 지원받는다. 나의 경우 6만 원을 주유하면 7500원 정도의 보조금을 받았는데, 이는 결제일에 차감하고 결제된다.
이것저것 다 빼면 이건 유리지갑을 넘어서 공기지갑인 것은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내 기준 평균 배송 7000개와 집화 1000개를 기준으로 통장에 찍히는 돈에서 고정 비용을 뺀 ‘진짜 월급’을 단순 계산해 보았다.
총매출에서 배달 대리점 수수료(배달 수수료 + 집화 수수료, 각 수수료는 대리점마다 다르다.)를 차감하면 통장에 570만 원이 찍힌다.
여기에 당장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반년에 한 번 결국은 내야 하는 일반과세자 부가세 10%(간이과세자의 경우는 0.5% ~ 3%), 57만 원을 뺀다.
그리고 차량 기름값 30만 원과 예비비로 차량 유지비 10만 원을 측정한다.
40만 원 이어도 벌써 많은데 차에 드는 비용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영업용 차량 보험비를 내야 한다.
나의 경우 나이도 어리고 자동차 보험 운전 경력도 없으니 1년에 294만 8천 원이나 나간다.
이를 다달이 따지면 월 25만 원 정도 나간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런 일은 잘 없지만 물건 파손과 분실에 대비해 10만 원 정도 예비비를 책정해야 한다.
언젠가 정말 비싼 물건을 잃어버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니 그 달에 잃어버린 물건이 없다 해도 매달 10만 원씩은 보험을 들 듯이 어딘가 따로 빼두는 것도 좋겠다.
이것만 해도 벌써 -133만 원이다.
여기에 일 년에 한 번 신고해야 하는 종합소득세와 매달 통신비, cj대한통운 앱 이용비 2200원 같은 잡다한 비용은 고려하지 않는다 해도 남는 돈은 437만 원이다(간이과세자였다면 대략 4,779,000원이다).
직장인 연봉별 실수령액 도표에 따르면 이는 연봉 6,300인 직장인이 매달 받는 월급과 같다.
이들의 세전 연봉은 525만 원이다.
비용 차감 전 내 월급이 570이니, 계산해 보면 직장인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떼이고 있었다.
만약 택배를 시작하고자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런 점들을 꼭 염두에 두고 꼭 간이과세 적용을 받기 바란다.
택배사업자는 세금 신고가 비교적 간단하지만 ‘매입세액공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부가세를 적게 내기 위해서는 ‘매입세액공제’를 많이 받을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매입세액공제’란 사업과 관련해 지출한 매입세액(매입금액의 10%)에 대하여 부가세 납부세액에서 제외하는 것을 의미한다.
택배 사업자는 사업용 차량을 구입했을 때나 주유비, 차량 수리비, 차량 관련 비용, 작업도구 구입 비용, 통신 비용에서 매입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사업자등록 전 구입한 차량이라 할지라도 사업과 관련한 업무에 사용된다면 비용으로 처리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꼭 택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사업자등록 전이라도 차량을 먼저 구매했다면 세금계산서를 교부받지 못했을 것이므로, 취득 내역을 증빙할 수 있는 계약서와 금융거래내역이라도 미리 구비해야 한다.
택배를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중고차를 사고 간이과세자로 시작하면 좋다고 생각한다.
초기에 이 일이 맞는지 테스트하는 단계이고 시행착오도 많은 시기이니, 초기 비용과 세금을 최대한 적게 부담하는 것이 좋다.
그러려면 무조건 부가가치세 신고 및 납부 부담이 일반과세자에 비해 훨씬 적은 간이과세자로 시작해야 한다. 만약 초기에 새 차를 사거나 매입금액이 큰 경우에는 간이과세가 불리할 수도 있으니 세무사와 상담해 보는 것이 좋겠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간이과세 포기 한 후에는 3년간 간이과세 재적용은 어렵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언제 어떤 일로 사업 관련 비용을 쓸지 모르니 평소 자주 사용하는 카드를 홈택스에서 사업용 신용카드로 등록해 놓는 것이 좋다.
나의 경우 평소 자주 쓰는 개인 체크카드와 화물복지카드를 사업용 신용카드로 등록해 두었었다.
이렇게 하면 부가세를 신고할 때 10만 원을 주고 세무서에 맡기지 않아도 충분히 혼자 계산할 수 있을 정도로 매입세액 공제/불공제가 자동으로 분류되어 신고가 좀 더 편해진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인터넷(전자장부 등)을 통해 전자신고를 할 경우 전자신고 세액공제 1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숫자만 봐도 머리가 아파지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 꼭 직접 해보고 일 년에 두 번 11만 원을 아끼시길 바란다.
(※ 세금 이슈는 매년 변경되니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