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우 Sep 10. 2022

택배기사가 책을 읽는 이유

독서천재가 된 택배기사

조금 슬픈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남고를 나왔다. 

물론 소위 ‘빡센 학군’이라, 남자들만 모여있는 조직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것들 -정글과도 같은 약육강식 원칙 하의 철저한 서열로 움직이는 세계, 지저분함, 칙칙함, 음담패설-이 조금 덜 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느 교실이 그렇듯 ‘잘 나가는 무리’와 ‘약한 무리’의 위계질서가 존재했다.


내 경우엔 그런 교실의 서열에서 조금 비껴난 존재였다. 

공부를 못했음에도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자기 자식과 어울린다고 했을 때 내심 싫어하지는 않는 아이였다. 

동아리 회장도 했었고, 여기저기 어울리는 친구들도 적지 않아 지금도 고등학교 동창 10명 정도가 모여있는 단톡방에 강제로 초대되어 이따금 강제로 호출당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강제로 불려 나가 대단한 친목을 다지는 건 아니다. 

30을 앞두고 열 놈이나 모여서 하는 일들이 고작 사는 이야기 좀 하다 피시방 가서 같이 게임하기라는 걸 떠올릴 때마다 내가 남고를 나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한다.(혹시 보고 있을지도 모를 친구들 사랑한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

나는 학교에서 그렇게 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등학생 남자아이가 항상 문학이나 철학 책을 끼고 다니며 읽는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광경이었던 것 같다.

“요즘 이러 이런 뉴스로 세상이 시끄럽던데, 희우는 여기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니?”

어쩌다 친구들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면 이렇게 제 자식에게도 묻지 않는 질문을 듣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책 읽는 사춘기 특유의 진지함으로 성심성의껏 답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책 읽는 아이’라는 이미지가 고등학교 내내 굳어져 있었다.


처음부터 책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책이란 내게 잉크가 묻어있는 종이 묶음일 뿐 특정한 물건 이상의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1학기 때였나 2학기 때였나 어느 날 전학 온 어떤 특이한 녀석과 짝이 되었다. 학생답지 않게 두발자유가 없는 학교에서 길게 기른 머리에 이어폰을 끼고서 곧 세상이 망할 것 같은 진지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그 녀석이 읽고 있던 책 헤르만 헤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였다.


저건 대체 뭐지? 

어떻게 저 애는 쉬는 시간에 앉아서 저런 책을 읽는 거지?

진지하고 똑똑한 아이라고 해봤자 공부를 하면 했지, 문학 책을 읽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그거 뭐야?”

그때까지의 나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게 두렵지 않은 친화력 만렙의 인간이라 아무렇지 않게 그 녀석의 고고한 분위기를 깨고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그 애는 문학, 철학뿐 아니라 록 음악에도 미쳐있었다. 

그 녀석 덕분에 많은 책과 작가, 사상을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되었고 라디오헤드를 시작으로 대중가요 외의 음악들도 많이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세계관이 훨씬 넓어졌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 친구가 뭘 하고 사는지는 모르겠다. 

섬세한 영혼을 가진 친구였으니 어딘가에서 자기만의 예술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소위 철이 들어 의외로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려나. 

이따금씩 궁금해진다. 

고등학교 때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자고 꼬셨던 친구가 그 친구이기에, 택배 일을 하면서 이따금씩 그 친구 생각이 난다.

이전 21화 택배기사, 월 600버는 '신의직업'? 실수령액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