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다툼의 긴 여정
“출근길에 전철역 입구에 세워 놓은 자전거를 도둑맞았어요.”
이처럼 범죄의 피해자가 해당 사실을 관공서에 알리는 것을 “신고”라고 한다. 수사기관에 신고나 *진정을 하게 되면, 수사기관은 그 사건이 수사할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검토한다. 이를 “내사”라고 한다.
(*진정: 억울한 사정을 진술하고 그에 대한 처벌이나 법 위반 사실의 해소를 요구하는 것. 이러한 서류를 진정서라고 한다.)
내사를 통해 신고된 사건이 심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입건”이 이루어지고, 이때부터 신고를 당한 사람은 죄를 지었다고 의심되는 “피의자” 신분이 되어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다. 반대로 혐의점이 없으면 더 이상 내사를 진행하지 않고 ‘내사종결’로 사건을 마무리하게 된다.
‘고소’와 ‘고발’은 위의 신고와는 다른 개념이다.
사기와 같은 범죄로 피해를 본 사람이 그 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하여 범인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을 “고소”라고 한다. 반면, 교통사고를 내고 도망간 뺑소니 운전자를 현장에서 목격한 제삼자가 이를 처벌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는 “고발”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는 고소장이나 고발장을 수사기관 민원실에 제출하여 접수되면 반드시 수사가 시작되며, 상대방은 즉시 피의자 신분이 된다는 점에서 신고나 진정과 차이가 있다.
또한, 고소와 고발은 처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허위로 진행할 경우 무고죄가 성립할 수 있지만, 신고는 허위가 있더라도 처벌의 목적 여부에 따라 무고죄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고소나 고발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고소나 고발을 하지 않고 진정서를 제출하는 것이 좋다. 고소를 했다가 무고죄로 고소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진정을 통해 수사 여부의 판단을 수사기관에 맡기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고소나 고발을 하려면 고소장이나 고발장을 작성해 제출해야 하며, 이때 상대방의 인적 사항과 어떤 범죄에 대해 처벌을 요청하는지를 명시해야 한다.
만약 상대방의 인적 사항을 잘 모른다면, 얼굴 특징이나 연락처 등 가능한 한 자세히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범죄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첨부하면 된다.
참고로 고소나 고발은 1심 판결 전까지 취소할 수 있으며, 새로운 증거가 없으면 같은 내용으로 다시 고소하거나 고발할 수 없다.
특히 고소나 고발 사건을 처리할 때는 반드시 무고 여부를 검토하므로, 상대방을 처벌할 목적으로 허위로 고소를 하거나 감정이 앞서 지나치게 과장된 주장을 할 경우, 오히려 역으로 고소를 당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고소장을 제출한다고 해서 무조건 접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단순 민사사안인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돈을 빌려주고 갚지 않은 경우, 고소인 측에서는 상대방이 돈을 갚을 능력이 있었는지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억지로 한풀이식 고소가 많아 사실관계가 불명확하고 수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민원실에서 아예 접수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단계부터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일부는 접수만이라도 하기 위해 등기우편으로 고소장을 보내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이유로 접수할 수 없다"며 전화로 설명해 주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법적으로 고소장과 고발장은 모두 접수해야 하지만, 시효 만료나 범죄 구성 요건에 해당할 경우 고소인의 동의를 받아 수리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고소할 내용이 계속 생기면 추가로 고소장을 제출하거나, 상대방이 무고죄로 맞고소하면서 사건이 복잡해질 수 있다. 이럴 경우 시간이 무한히 흘러가게 된다.
경찰이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면 관련 서류와 증거를 검찰에 보내게 되지만, 간단한 사건이 아닐 경우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일정을 맞추다 보면 몇 달이 더 지나갈 수 있다.
고소인이나 피의자가 조사 요청에 따라 시간을 맞춰 나와 조사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담당자가 자리를 옮기는 상황에서 여러 사람을 고소하거나 10여 가지의 복잡한 죄명이 걸려 있으면, 아예 사건을 후임자에게 넘길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긴다. 결국, 이런 식으로 몇 년이 지나고 고소인이 스스로 고소를 취소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형사소송법 제257조에는 ‘검사가 고소 또는 고발에 의하여 범죄를 수사할 때에는 고소 또는 고발을 수리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수사를 완료하고 공소 제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조문이 있지만, 이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이 조문은 3개월 안에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처리해야 할 기록이 쌓이면 우선 처리하기 쉬운 사건부터 처리하게 된다. 이로 인해 장기 미제 사건은 더욱 방치되기 쉽다. 결국, 사건 처리 속도가 느려지고 만다.
후임자도 원래 자신의 사건이 아니고 시간이 많이 지나버리면 사건 관계자들이 “그 사건은 이미 끝난 것 아니냐”며 출석을 잘 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건은 흐지부지하게 되고 결국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
민사소송의 경우도 매년 100만 건이 넘는데, 1심에서 법정 선고 기간인 5개월을 넘기는 경우가 10건 중 3건에 이른다. 상소심으로 가면 이보다 훨씬 더 길어지며, 특히 인사 이동이 있을 때는 소액 사건이라도 재판 기일이 몇 달씩 미뤄지곤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데 5시간이 걸린다고 할 때, 이 5시간은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시간만을 의미한다. 즉, 집에서 나와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 진입하기 전까지의 시간과, 고속도로에서 나와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은 별도로 계산해야 한다.
따라서 민사나 형사 소송을 진행하기 전에 고민하는 시간, 법률 상담을 받고 내용증명을 보내는 일련의 과정, 그리고 확정 판결을 받은 후 이를 바탕으로 경매나 손해배상 소송을 통해 돈을 받는 과정은 모두 별개의 시간으로 간주해야 한다.
진행 속도가 느린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조사나 재판을 한 번 받고 나면 “며칠이면 사건이 알아서 해결되겠지”라는 기대와는 달리, 법적인 다툼은 정신적인 고통은 물론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소모될 뿐만 아니라, 사건이 정리되는 경과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