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부모가 아이를 망친다?
완벽한 부모가 아이를 망친다 라는 책이 있다.
요즘 도서관에 일주일에 3번은 죽치고 앉아있어서, 제목만 보고 느낌이 와서 읽게 되었다.
나는 실은 강박장애인지 모르고 살았었다.
하지만 아이와 병원을 다니게 되면서,
나를 그동안 가두어두었던 것들이 ‘강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바쁘게 살았다.
하루 시간을 세세하게 쪼개서 살만큼. 아침에는 늘 일찍 일어났다.
아이들 밥도 챙겨야 하고, 옷도 입히고 준비물도 한 번 더 체크해서 학교에 데려다줘야 한다.
그전에, 이불정리도 해야 하고 청소기도 한 번 돌리고 눈앞에 쓰레기는 없어야 한다.
화장실에 슬리퍼는 물기가 빠지게 늘 두어야 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수저는 어른수저, 아이들 수저 꼭 다른 거치대에 말려 두어야 하고,
아침에 먹은 밥그릇을 물에 불려두지 않으면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는 내내 생각이 났다.
마지막으로 항상 불안한 것.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가스불은 껐는지, 고데기는 뽑아두고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집에 되돌아간 적이 수도 없이 많다.
이 모든 것들이 ‘강박’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다. 서비스직에 근무하면서 늘 듣는 말은 ‘에너지가 좋다’라는 말이었다.
어두운 분위기에서도 내가 가면 밝아졌다. 나는 일을 하는 것이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었다.
또 그렇게 인정받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이도 (내가 일하는 것에 비해) 나름 잘 크고 있었고, 좋은 직장과 가정적인 남편. 부러울 것이 없었다.
아이의 우울증과 ADHD진단으로 나도 함께 치료를 받고 있다.
그동안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에 대해 진심으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오롯이 남의 눈에 비치는 나, 남들이 생각하는 나를 위해 살아왔었다.
진짜 ‘나’가 무언지 몰랐다.
결국 ’ 강박‘은 모든 것에 만족하지 못함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더 잘하기 위해 더 큰 목표를 가진다.
더 인정받기 위해 더 열심히 한다.
이런 마음들이 나의 마음을 더 갉아먹고 있었다.
강박과 ADHD는 상극이다.
자유로운 영혼과 파워 J의 대결이라고나 할까.
매일 부딪히는 이유가 둘 다 아파서였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단편적인 예를 들자면,
우리 아이는 시간약속을 잘 못 지킨다. 그에 반해 나는 단 1분도 늦어본 적 없다.
이렇게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부딪히니 그동안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도 힘들었다. 속이 문드러지는 일의 연속이다.)
오늘은 아이와 게임 때문에 큰 실랑이가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로블록스’ 때문에 미칠 노릇이다.
누가 개발했는지, 참 로블록스 회사에서는 개발자에게 상 줘야 한다.
전 세계 초등학생들이 이것 때문에 난리이니 말이다.
게임으로 인한 ‘도파민 중독‘은 뇌가 아픈 우리 아이에게는 완전한 ’ 독약‘이다.
그 짜릿함에 빠져 자극을 계속 추구하기에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한다.
주변에서는 이야기한다.
아이한테 선택권을 주라고, 균형점을 잘 찾아야 한다고.
그럴 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네가 한 번 해봐라. 그게 쉽냐!’
균형점을 찾았다면, 난 물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다.
아이의 욕망은 끊임없이 커질 것이다. 나의 능력은 한계를 느끼게 되어
결국 아이의 요구를 거절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거절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는 채워지지 못한 욕망 때문이 아니라
거절당한 것에 더 큰 고통을 느낄 것이다 “
- 장 자크 루소 <에밀>
어떻게 해야 아이와 마음이 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나의 이 답답한 마음을 풀게 할 수 있을까.
결국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답이다.
나는 강박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아이와의 직접적인 해결책은 ‘정면돌파’다.
비록 힘들어도, 아이에게 ‘적절한 좌절’을 주어야 실패에서 일어서는 힘이 길러지는 것이다.
내내 전력질주 할 수 없다.
중간중간 속도를 조절하고 휴식을 취해야 먼 길을 갈 수 있다.
강박을 벗어나 ‘완벽한 아이’가 아닌
‘회복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가진 아이‘로 응원해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