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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쓰 Sep 30. 2024

#24. 이거야 말로 대환장

“지갑이 없어”

더운 여름 긴 하루일정을 소화하고 녹초가 된 엄마와 잘 시간을 이미 놓쳐 눈꺼풀이 내려온 2살 5살의 꼬맹이들과 리조트 방문 앞에 도착했을 때, 남편이 한 말이었다.


우리의 리조트 키와 전날 출장의 여파로 회사경비 70만원정도가 들어있는 지갑의 분실은 그야말로 남편과 나의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해준 남편에게 화가 단전에서 치밀어 올랐지만, “본인은 얼마나 힘들겠어”라는 생각으로 화를 꾹꾹 눌러 담았다. 


차를 확인해보고, 다녀온 장소에 곳곳마다 전화해보았지만 지갑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했다. 지속적인 복기를 통해 생각해낸 유력한 후보지는 뮤지엄 인생네컷 스티커사진 박스 안이었다. 늦은 시간 뮤지엄과 통화가 불가능했기에, 내일 아침에 전화해보자! 그때까지 생각하지 말자! 했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지갑 찾는 방법” 등을 검색하다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오픈시간에 맞춰 뮤지엄에 전화를 하니 어떤 천사분이 지갑을 인포에 맡겨두셨단다(복 받으실 겁니다!!!!!!). 다행이다,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한결 가벼운 마음이 되었다. 지갑은 찾으니 마음이 넉넉해지며, “그래, 휴가지에서 이런 에피소드 하나쯤은 있어야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체크아웃한 숙소에서 왜 전화가 오지?”

1박 2일의 남은 휴가를 위해, 다른 여행지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한 2시간쯤 달렸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혹시 회색 캐리어를 하나 두고가셨을까요?!”

두둥- 이번엔 나였다. 순간, 화장대 옆에 아주 이쁘게 세워둔 캐리어가 떠올랐다. 고작 3박 4일이었는데!!! 이런 빅 이벤트를 두번이나 치를 일인가!!!


다시 돌아갈 수가 없어, 일단 새로운 숙소로 내달렸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확인하니 불행 중 다행이도 아이들의 물건은 모두 있었다(둘째 기저귀 까지!!). 반면, 우리 부부의 물건은 팬티한장 없었다. 단벌신사들이 되어 1박 2일 내내 젖은 옷을 말려입고, 꼬질꼬질해져 갔지만, 다채로운 여행에 감사하다며 정신승리를 했다.


둘째 아이가 활발히 걷기 시작한 이후 4식구가 여행을 온건 처음이었다. 구차한 변명을 하자면 아이가 하나였을 때 오는 여행과는 완전 차원이 달랐다. 말 그대로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특히, 19개월의 둘째 아이는 그야말로 경주마였다. 잘 타던 유모차를 안탄다고 하기도, 여행중이라 낮잠 시간 등을 조율해주기가 어려우니 갑작스런 컨디션 난조도 있었다. 그 와중에 5살 아이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들어주기란-


그래, 아이들만 잊어버리지 않으면 된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뭔지 모를 정신없음, 알수 없는 분주함, 활기찬 두 마리를 쫓아다니다 보면 짐까지 생길 여력이 없었다. 우리의 짐들은 항상 어딘가에 둥둥 떠다녔다. 밤에는 아이들과 그대로 잠들었기에, 육퇴후 먹겠다고 야심차게 싸간 맥주는 여행 내내 한번을 꺼내지 못했다.


서울로 돌아오기 직전 짐을 정리하면서 큰 아이에게 이번 휴가중에 뭐가 제일 재미있었냐고 물으니 수많은 컨텐츠 중 구슬아이스크림 먹은게 젤 재미있었단다(증말!!!!!!)


그럼에도, 숙소의 모든 베개와 쿠션을 가지고 와서 집을 만들었다며 그 사이에 들어있는 두 마리, 고기집 넓은 마당에서 물고기 놀이를 하자면서 두 손을 머리에 모아 물고리를 흉내내는 두 마리, 뮤지엄 앞에 멋진 차에서 사진 한장 찍자고 했더니 있는 힘껏 다리를 벌리며 요가를 시전하는 두 마리, 벌벌떨고 있는 엄빠와 달리 손에다 먹이를 올려두고 양들에게 먹이를 주는 용기있는 두 마리, 수영 중 튜브를 연결해 기차놀이를 하고 있는 두 마리를 떠올리니, 우리의 대환장 파티는 당분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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