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조각. 강제 종료

by 개복사

/

48 조각



너는 왜 자꾸 그럴까.

나와의 대화를 피하고

답하는 걸 넘어서 무응답으로 대꾸한다.

분명 네가 보이는데. 눈앞에 있는데.

쉼 없이 돌아가는 모래시계는

우리가 여기에서 모든 걸 끝내야 한다고 말한다.

어디까지 남겨두었는지 확신이 없는데

지금에 와 너를 강제 종료시키면,

지난 몇 시간은, 며칠은 어떻게 되는 건데.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는지.

마감은.

나 혼자 정하는 게 아니란 말이야.

날이 더워 버티기 힘든 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너 힘들까 봐, 불필요한 창을 모두 끄고

최소한의 시스템으로 일하고 있다고.

그런데도 넌 왜 자꾸 멋대로 사라지고 마는 건데.

멈추고 꺼지고 그렇게

흔적을 지우고 사라져 봤자야.

너 일해야 해, 나와 함께.

여름이라 그런 걸까?

그럴 리가 없는데. 문제 될 게 분명 없는데.

휴지통도 바탕화면도 다운로드 폴더도

온갖 널린 캐시 파일도 신경 써 지우는데도

프로그램은 꺼지고 만다.

내 정신이 끊어지고 만다.

끓어오르는 한숨을 참는 동시에

이마를 짚는 손짓을 차마 숨기지 못하고,

그런 나를 보고 스쳐 가는 과장님이 시선 끝에 걸릴 때,

아차 싶은 마음으로 마음에 인자를 새기며

다스리고 다스리고 다스린다.

버텨주면 좋겠다.

인간도 버티는데, 기계도 버텨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하는 것만 보내면 한숨 돌릴 수 있었는데,

프로그램은 또다시 강제 종료고,

서둘러 다시 켜도 무한으로 돌아가니

못 참고 일어나 이땐가 싶어 양치하러 간다.

이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보내는 편지.

버텨, 컴퓨터야.


by 개복사

이전 18화47 조각. 앓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