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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Nov 25. 2024

82 조각. 기억의 저장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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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조각



핸드폰의 저장 용량이 1TB에 도달했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태초에 몇 GB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큰 용량.

요즘 대중적인 저장공간은 128GB 또는 256GB.

지금 내 핸드폰의 저장공간은 512GB지만,

직전에 사용하던 핸드폰은 64GB였다.

64GB로 꽤 오래 지냈다.

불편하기는 했다.

사진 용량만 해도 제법 되어서

큰 용량의 클라우드를 정기결제해야 했다.

주기적으로 데이터를 백업하고

쓸모없는 앱을 수시로 지워도

핸드폰이 빨라지지 않을 때쯤,

보안 업데이트에서 끝내

배제되었을 때쯤에서야 벗어났다.

한때는 64GB가 제일 큰 용량이었고,

아주 살만했고, 심지어 든든했다.

지금은 기본 용량이 516GB,

클라우드는 2TB를 사용하고 있다.

저장공간이 흘러 넘치니

마음껏 사진을 찍고 있고,

그만큼 데이터 정리와 백업뿐 아니라

달력을 만드는 일도 고되지고 있다.

매해 찍은 사진과 써둔 글을 모아 만드는 달력은

사진과 글을 선정할 때면 조금 힘들지만,

인쇄된 완성본을 보고 있으면 멈출 수가 없다.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마음과는 다르게 점점 더 진하게 남기고 있다.

내년 달력에는 어떤 문구를 넣게 될까.

그렇게 만든 달력을

이번에는 누구에게 선물하게 될까.

은희경 작가의 장편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달력을 선물하면 일 년 동안은

그 사람에게 기억될 수가 있어.”

달력은 한해 쓰고 나면 쓸모를 다해

무용지물이 되어 버려지지만,

끝만을 생각하기에는

사용되는 동안의 시간이 적지 않다.

어쩌면, 모든 날 모든 순간일 시간.

지워질 수 없는

기억의 저장 공간을 만드는 달력 프로젝트가

계속해서 진행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제 한 달 남짓 남은 나만의 마감에 힘내본다.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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