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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Nov 22. 2024

81 조각. 열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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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조각



손에 대해 생각한다.

말이나 문자를 생각하는 것처럼.

피아노를 치는 손,

전화를 붙들고 있는 손,

종일 물에 부는 손,

마우스를 벗어나지 못하는 손,

무언가를 내내 드는 손,

십자가나 염주를 들고 있는 손,

아이와 맞잡은 손,

글을 쓰는 손,

말을 하는 손.

봄에 수어를 배우려고 노력했는데,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있다.

그런 내가 답답하고 싫고 별로다.

요즘은 수어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매체에 전보다 많이 등장해서 그런 걸까.

그런 식으로 영향을 받는 걸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000입니다.

미안합니다.

가장 처음 찾아본 말이다.

모든 인사.

시작을 열고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할 수 있는,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인사.

그 이상의 말을, 아직도 모른다는 게 사실이라니.

최근에 개봉한 영화 《청설》은

동명의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극 중 청각장애가 있는 인물이 나온다.

영화 속 대사를 살려보자면,

나는 더 잘 ‘보는’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

그런데 그마저도 잘 못하는 중인 것 같다.

영화도 아쉬운 부분이 있으니

사람은 그보다 더 모자란 게 맞나 싶기도 하고.

어릴 적의 나는,

매일 밤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잠들었다.

부모님부터 나까지 모두 종교가 없는데도 그랬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저 마음이 그랬다.

오늘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맡을 수 있고

맛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다리와 두 팔을 움직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소중하게 생각하겠습니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친 후에 잠들었던 어린이는

그런 어른으로 자랐나.

생각할수록 쉽게 답할 수 없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사람이 많은 번화가에서

귀마개를 착용한 채로 걷고,

물속에 가만히 잠겨 보기도 한다.

같을 순 없을지라도

다가가려는 마음이

애틋하고 따뜻했다.

손을 생각한다.

당연한 듯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열 손가락.

대부분의 생계 수단이자

누군가에게는 말의 수단이기도 한 손.

이 손을 잘 쓰고 싶다.

남은 삶에도 손이 주어진다면.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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