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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Nov 18. 2024

80 조각. 북극성과 구황작물과 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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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조각



영하의 날씨가 시작된다.

나는 겨울에 태어난 아이.

가끔은 겨울 전체를 나의 계절로 생각한다.

그러면 속 앓게 하는 무엇이 있어도

그냥 거기에 고구마나 계란을 구워 먹게 된다.

있는 감정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외면하는 것보다 낫다.

제법 뜨겁구나, 온도를 가늠하고

들끓는 분노가 있는 김에 10km를 뛰거나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읽거나

친구를 만나 목이 쉴 때까지 열변을 토하는 것이다.

어릴 적, 겨울마다 할머니 댁의 논에서

고구마, 감자, 계란 같은 것을 구워 먹곤 했다.

땅의 빛이라곤 우리가 지펴낸 장작불뿐이고,

하늘엔 별이 총총총 박혀 있어서

어디를 보아도 아름다웠다.

겨울밤은 꽁꽁 싸매도 추웠지만,

은박지 속 구황작물과 계란을 생각하면 다 괜찮았다.

먹어도 되냐고 물으면

언제나 아직 멀었다는 답이 돌아왔던,

인내를 시험하던 기나긴 시간.

얼굴과 무릎에 닿는 불의 온도는

뜨거운 듯하면서도 따뜻해서 행복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하늘을 꼭 기억해 두라며

별자리를 알려주셨다.

저기 저 반짝이는 별이 북극성이야.

길을 잃었을 때, 저 별만 찾으면 돼.

북극성 말고도 겨울철 별자리를 매번

손으로 그려가며 설명해 주셨는데.

나는 북극성도 못 찾고 별자리도 모른다.

별자리를 오래 쳐다볼 인내가

어린이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 시선은 늘 활활 타오르는 불에 가둬진

고구마와 감자와 계란에 있었다.

그래서 기억하는 건 음성뿐이다.  

북극성만 알면 길을 찾을 수 있어.

저길 봐. 그리고 꼭 기억해.

반복해서 말해주던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

나보다 어린 동생은 그마저도 흐릿하다 하고,

똑똑하게 기억하는 건 언니뿐이다.

이제는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할 추억.

같은 경험을 해도 기억과 감정 모두 다르다는 걸,

추운 겨울에도 논에서 마주했던 불처럼

속이 활활 타오를 수 있다는 걸,

그때의 어린이는 몰라서

그래서 더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아는 내게도

시간이 지나 추억할 소중한 날이 쌓이고

행복한 나날도 새롭게 등장 중이다.

오랜만에 오늘은 밤하늘 좀 바라봐야지.

나쁜 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반짝이는 것들에 집중해야겠다.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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