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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조각
밥을 먹는다.
일단 탄수화물을 채우고 본다.
아무 생각 못 하게.
내가 나를 헐뜯지 못하게.
후회하지 않는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선택하지 않은 길을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
그건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
존재하지 않는 것에 휩싸이는 일은
허상에 사로잡히는 것과 같고,
그사이 외면당한 현실은
엉망진창으로 변질되어 있을 것이다.
반복될수록 더 현실을 외면하게 되고,
종래에는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넷플릭스 드라마로 나온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속 인물처럼
암브로시아 같은 걸 찾게 되겠지.
내가 나를 놓아버리는 것만큼
더 슬픈 일이 있을까.
내일은 수능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수능 이후를 떠올린다.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열아홉은 아직 보호가 필요한 어린 나이.
절대 어른에 근접하지 않다.
나는 수능 전날 찹쌀떡을 먹다가 심하게 체해서
최악의 컨디션으로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험을 제대로 망쳤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다.
내내 울었고 나쁜 생각도 했다.
내 미래가 너무 깜깜해 보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세상에서 홀로 낙오자가 된 기분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물론, 시험을 망쳤기 때문에
원하던 시작도, 삶도 가질 수 없었고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 대안을 찾고
헤매고 좌절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은 살았다. 살아남았다.
수능은 내게 있어 즐거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나는 수능 전날이면 찹쌀떡을 먹는다.
어딘가에 있을
응원받지 못하는 친구들을 떠올리며
잘 봐서 원하는 삶에 찰싹 붙으라고 응원하기 위해.
혹 원하는 결과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경험도 같이.
길은 어디에나 있다.
빛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뭐든 길이 된다.
그러니 나쁜 생각이 들거든
일단 밥 한술을 들어주었으면.
배부르고 배 따수워진 다음에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뉴스로 만나지 않고
어느 날 길 가다 스치거나
사회에서 만나 인사를 건넬 수 있기를.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