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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Nov 06. 2024

76 조각. 어디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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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조각



날이 추워졌다.

갑자기 따뜻하게 입으려니

생각지도 못하게 갑갑하다.

두껍게 입든 얇게 겹겹이 입든.

그래서 오늘은 조금 가볍게 입었고

돌아다니는 내내 후회했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

춥지 않고 덥지 않은 곳으로.

안식을 위해.

평화와 고요의 시간을 쫓아서.

한여름의 수박도 한겨울의 군고구마도 좋지만

어느 날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온한 형태로 존재하고 싶다.

무지의 상태가 괜찮도록.

아무것도 모르나 어떤 것도 알 필요 없이

자유롭게 흘러 다니고 싶다.

그런 꿈을 꾸고 있을 만큼 현실은 아주 바쁘고

어쩌면 아주 나쁘기도 하다.

벌써 며칠째, 아침마다

카페인을 들이부으며 버티는 중이다.

피로의 악순환이다.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지만

절제도 자제도 없이 굴러가는 대로 살고 있다.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한 기억이 남아있어도.

멀지 않은 겨울에 겪은 차디찬 수술대와

담당 선생님과 숱하게 스친 의료진과

간이침대에서 겨우 쉬는 어떤 얼굴들.

내가 가는 곳이 그런 과거여서는 안 되는데.

어떤 고통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어떤 고통은 반대로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는 걸,

이미 나는 겪어 안다.

그러니 지금 이 길은 미래로 가는 길.

겪은 적 없는 길을 새로 닦으며 나아간다.

정말이지, 어디로든 가고 싶다.

바쁜 게 나아진다면. 그땐 정말 떠나야지.

어디로든.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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