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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조각. 천국의 계단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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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조각



비타민B를 다 먹어서

대신, 초콜릿을 먹었다.

비타민B가 있을 때도

종종 그러긴 했지만 혼자 괜히 멋쩍어

퇴근하자마자 새 통을 챙겼다.

출근길 아침에는 아베 마리아를 듣는다.

아베 마리아는 그 자체보다는

SBS에서 방영했던 《천국의 계단》이라는

드라마 OST로 더 친숙하다.

23년 아니고 2003년 12월에 방영 시작해

2004년 2월에 20부작으로 끝난 드라마다.

이유는 별거 없다.

운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알 것이다.

‘천국의 계단’이라는 운동 기구를 말이다.

그렇다.

인생이 ‘천국의 계단’이라서 듣는다.

정말 하나도 연결되지 않는

의식의 흐름대로지만,

‘아베 마리아’를 듣고 있으면 위로가 된다.

드라마 속 주인공에게는

시련이 밑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데,

인생이 꼭 그렇게 고난으로만

이루어져 있진 않아도

어느 날은 발치에 걸리는 모래알 하나가,

어느 날은 제대로 지우기 전

애매하게 다 쓴 수정테이프가,

어느 날은 옷에 일어난 보풀이,

못 견디게 하니까.

오전과 오후 기온이 다르고

실내와 바깥 공기도 달라

반소매와 긴소매와 코트를 골고루 입는 것처럼.

되는대로, 괜찮을 수 있는 것들을

수집해서 삶의 틈을 메우는 것이다.

무언가를 쉬지 않고 하며 살아가는 것.

덜 넘어지도록. 덜 다치도록.

서두르지 않으며

넘어질 땐 넘어지고

일어서야 할 땐 일어설 수 있도록.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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