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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조각. 뒤늦게라도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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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조각



아픈 건 무서운 일이다.

아픈 건 괴로운 일이다.

아픈 건 서러운 일이다.

통증은 바퀴벌레 같다.

어딘가에 있다.

보이지 않을 뿐이다.

통증은 건강한 나를 잡아먹으며 자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부터 갉아 없앤다.

가끔은 나를 이루는 모든 게

사라진 기분을 느낄 땐,

살려달란 소리조차 꺼내기 힘들다.

진통제를 먹다가

스테로이드 주사도 맞았다가

충격파 요법을 하고 있는데,

통증은 여전하다.

병원에 실려 갈 정도나

이미 목숨을 끊은 뒤가 아니고서는

대부분의 통증은 이해받지 못한다.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아?’

‘니가 뭘 잘못했겠지.’

‘그럴 만해서 그렇겠지.’

우리가 이해하는 영역은,

직접 겪은 경험의 일부분에 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의 일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겪은 일까지

헤아리며 이해하고자 한다.

같이 아파하고 때론 분노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 앞에서

돌이킬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등 돌리고 귀를 막는 사람 사이에서도.

뒤늦게라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잘못된 일은 바로잡기 위해.

참담한 마음으로,

기다리지 않고 기억한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동하며

아직 지킬 수 있는 것들을 지켜낸다.

무탈한 나의 하루는

그런 사람들의 의지와 행동으로

지켜졌으니,

누군가의 무탈한 하루와

그런 삶을 지향하는 나를 위해

막막한 현실일지라도 맞서 버텨본다.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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