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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조각
‘읽을 것’이라고 쓰다가
‘잃을 것’이라고 오타가 났는데,
그 차이가 너무 커
고치지를 못하고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았다.
기역에서 히읗까지의 거리처럼.
닿지 않아 서로를 갈망하게 되는 끝과 끝.
읽을 것이 희망이라면
잃을 것은 절망이겠지.
아니,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회의, 창업, 보험, 적금 등등
읽어야만 해서 읽는 것은 언제나 괴롭다.
재미없는 책을 완독하기 위해 읽는 것도.
잃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갑을 잃어버리는 건 절망,
나쁜 습관을 고치는 건 희망,
건강을 잃는 건 절망,
식탐을 잃는 건 희망,
사람을 잃는 일도
소중한 관계라면 절망이지만,
못된 거래처나 상사, 팀원이라면 희망이다.
어쩌면, 희망이 닳아서 절망이 되는 것일까.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뿌리를 내려
무의식을 옭아맨다는 걸 알면서도
절망에 대해 생각한다.
어제 읽은 책에 대한 감상문을 남기던 중에
날벼락이다.
눈과 비와 우박과 꽃비가
동시에 내리는 날씨처럼.
지금부터라도 희망을 생각해야지.
희망을 생각하면 희망찬 날이 올 테니.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