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로 얻는 삶의 여유
지치면, 숨 쉬는 것도 귀찮다. 깜빡이는 눈꺼풀도 무겁다. 한없이 가라앉는 몸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럴 때의 사람은 겉껍데기만 남은 듯해 사람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는 너무 많은 품이 필요하다.
사람이 여유가 없으면 밑바닥을 보이게 된다. 질척거리는 자신만의 바닥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넘어지고 또 넘어진다. 넘어졌다는 사실에서 못 벗어난 채로 어그러진 감정에 빠진다. 특히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감정 조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그러므로 정상적인 사고도 불가능해진다. 나중에 후회할 일들만 한다. 그럴 때는 나를 잃어버린 기분이 든다. 분명 내가 맞는데 생판 처음 보는 남인 것도 같다. 할 일이 많을 때는 더 괴롭다. 일이 앞으로 나아가지를 않는다. 진척 없이 계속 미끄러지기만 한다. 말을 뱉을 때는 또 어떤가. 뱉는 순간 후회하며 다시 주워 담고 싶지만 돌이킬 수 없다. 그러니 마음이 팽팽하게 부풀어 독으로 가득 차기 전에 원상태로 복구시켜야 한다.
힘들 때, 지칠 때,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았을 때, 사람마다 그것들을 깨부수고 일상을 지탱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요즘의 나는 그렇게 격해지기 전에 산책을 자주 하려고 노력한다. 산책을 한다는 것은 어디든 어딘가로든 걷는다는 말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머물러 있는 장소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것은 잃어버린 여유를 되찾는 첫걸음이 된다. 계속 자극을 받는 곳에서 탈피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
사람을 사람으로 살아있게 하는 것에 많은 것이 있겠지만, 그중 걷는 일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두 다리를 교차하며 걷다 보면 두 팔도 앞뒤로 좌우로 같이 흔들리고, 경직되어 있던 몸은 조금씩 이완되어 불규칙하던 숨도 차차 고르게 쉬어질 것이다. 계속 걷다 보면, 시끄럽던 마음도 머릿속도 평소와 같게 맑아질 것이다. 어떤 어두운 시기를 지나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분명한 신호다. 그렇게 조금의 틈만 생겨도 우리는 금방 삶의 여유를 잡아챌 수 있다. 이기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인간에게 정상의 상태는 무너지거나 소진된 상태가 아니라 에너지가 적당하게 차 있는 평온하고 평화로운 상태일 테니까.
밖으로 나온다고 당장 처한 현실을 벗어나는 것도 외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도 물건과 다르지 않으니까. 다 쓴 건전지를 계속 쓴다고 나간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모기는 모기채 사이로 빠져나가고, 블루투스 이어폰에는 밖의 소음만 들려오고, 선풍기는 돌아가지 않는다. 새 건전지를 써야 한다.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해야 한다. 모든 게 소진된 마음은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가급적 방전되기 전에 힘을 충전하며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수밖에. 인생은 길다. 햇볕을 쬐고 바람을 느끼며 환기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블랙홀에 빠져도 빠져나올 구멍을 만들어야 한다.
한 마디로 산책은, 몸 구석구석 부유하는 초미세먼지까지 청소기와 공기청정기로 빨아들여 맑은 공기로 탈바꿈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출퇴근길이나 등하굣길 또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거나 필요한 무언가를 사러 가고 음식을 포장해 오는 등 누구나 일상 곳곳에서 걷곤 하지만, 따로 시간을 내어 조금씩이라도 산책을 하는 까닭은 그래서다. 내 삶에 해가 잘 들게 하고 바람도 잘 들게 하고 싶어서.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을 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어서.
그럼에도 산책을 나가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라도 걸어보고자 목적지를 정해 본다. 목적지는 때마다 다르다. 먼 거리의 카페가 되기도 하고 주변의 공원이 되기도 하며 동네나 회사 주변에 새로 생긴 곳들이 되기도 한다. 설정해 둔 목적지까지 천천히 걷다 보면 앞서 말한 것처럼 팽팽하던 마음의 공간이 서서히 가라앉음을 느낀다. 나오기까지는 분명 힘들었는데, 어느새 여유를 되찾고 현재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산책은 정말 어떤 모습이더라도 상관없다. 또한 생각보다 사람들은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사람이 들고 있는 음료가 맛있어 보인다거나 입고 있는 옷이 취향이라 쳐다볼 수는 있겠지만,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 모자를 써도 좋고 안 써도 상관없고 무슨 옷을 입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산책을 하는 일 자체만이 중요하다. 삶의 여유를 되찾고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산책만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