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삶, 식물 편

교감이 건네는 생기

by 개복사

식물과 함께 살기. 몇 차례 시도했다가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같이 살아 숨 쉬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하나의 생명을 세상에서 없애버린 사실은 언제 생각해도 적잖게 충격적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다. 엄마는 죽어가는 식물도 살리고 만나기 어려울 거라는 식물의 꽃도 뚝딱 피워 내는 사람. 어쩌면 그 때문에 내가 식물을 계속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함께하고자 탐구하는 까닭도.


‘반려식물’이라는 말도 부족한 말 같은 엄마와 식물 사이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엄마에게 식물의 의미가 뭘까 한번씩 알고 싶다가도 영영 몰랐으면 싶기도 하다. 지금 거실 한편에 작은 정원처럼 자리한 식물은 난, 화성환, 드라코, 퓨전화이트, 핑크레이디, 율마, 풍란, 콩고, 천냥금, 상록넉줄고사리, 스투키, 아글라오네마, 디스키디아, 홀리페페 등등이 있다. 제법 다양해서 들여다봐야 읊지 바로 이름을 대라고 하면 한 번에 말하기 어렵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축소된 정원이다.


오래 함께했던 식물들은 지금과는 결이 다르다. 조금 더 부피가 큰 식물들이었다고 해야 하나. 성인의 반만 한 크기의 이름 모를 선인장, 자스민, 부레옥잠, 산세베리아, 만냥금, 스파트필름 등이 있었고, 텃밭에는 고추와 토마토를 중심으로 당근, 배추, 호박 등이 있었다. 집에 식물이 많았어도 내가 맡은 역할은 없었다. 이따금씩 물을 주거나 잎의 먼지를 닦아주고 옆에 앉아 일과를 조잘대기는 했지만, 그 많은 식물이 각자의 속도로 자라고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웠던 건 전부 엄마의 손길에서였다. 내가 좋아해서 화단 한편에 자리를 마련해 심어주었던 해바라기조차도. 그렇게 많은 식물을 바라볼 때의 엄마는 언제나 생기가 넘쳤다. 방금 막 틔운 새싹이나 원하는 만큼 비를 맞은 잎처럼 반짝였다.


엄마의 식물이었는데도, 이제는 더 이상 같이 있지 않은데도 마음에 박힌 식물이 둘 있다. 이름을 모르는 선인장과 자스민이다. 요즘같이 사진이 흔한 시절이었으면 알 수 있을 텐데,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고 카메라가 귀해서 선인장의 이름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우선, 좀 더 나쁜 기억으로 남은 선인장을 말하자면, 엄마가 손가락 두 마디에서 길이 40cm 정도로 키운 식물이다. 옆에 새끼도 치고, 나날이 길게 뻗어가는 가시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한 번은 미취학아동시절의 동생이 넘어져 엉덩이에 가시가 박힌 적도 있었다. 정말 잘 크고 있었는데, 하지 말라고 말해도 아빠가 상습적으로 선인장에 담뱃불을 지져 꺼서 결국은 죽었다. 그때 엄마뿐이 아니라 아빠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슬퍼했다. 그래서 종종 엄마와 장에 갈 때, 금도끼 은도끼처럼 이 선인장이 그 선인장이냐 묻지만 찾지 못했다. 언젠가 찾게 된다면 열심히 공부해서 꼭 함께 살아가보고 싶다.


그리고 기억에 남아있는 다른 식물인 자스민은, 정확한 명칭으로는 브룬펠시아 자스민이다. 내가 제일 사랑한 엄마의 식물. 어릴 때, 적막한 집에 혼자 있을 때면 너무나도 무서웠는데, 언제나 꽃을 피우고 은은한 향까지 보내주는 자스민 덕분에 무섭지 않게 지냈고 그 곁에서 공부하며 성적도 많이 올렸다. 선인장과 다르게 자스민은 환경이 받쳐주더라도 절대 들이지 않을 생각인데, 내게 있어 자스민이란 기억에 있는 자스민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곁에서 지켜보기 만한 나도 이렇게 애틋한데, 평생을 식물 곁에서 늘 식물을 보고 키우고 들여오고 꽃을 피우는 엄마는 어떤 마음일까. 엄마에게 식물이란 과연 무엇일까. 곁에서 지켜보기에 참 신기한 것이, 작년에 엄마가 크게 다치셨는데 그간 엄마가 그렇게 애써도 피우지 않던 화성환 꽃이 내내 피었다. 정말 끝없이 계속 피어서 회복하는 엄마께 큰 힘이 되었다. 그 후에는 난의 꽃대가 차례차례 올라와서는 꽃을 피웠다. 엄마가 식물과 하는 교감은 무엇일지 정말 나는 알 수가 없다. 사실 영영 모르고 싶기도 하다. 엄마가 식물들 앞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시간대별로 내 기억 속에 저장되고 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자리를 비울 때나 바쁠 때나 언제나 엄마의 정원은 싱그럽고 엄마도 늘 온 마음으로 정원을 살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함께 있는 내게도 그 싱그러움과 온기를 나눠주곤 하는 것이다.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확실하게.


엄마의 정원에 유일하게 자리한 내 식물은 올리브나무다. 최근에 함께하게 되었는데, 새끼손톱만 했던 잎이 제법 커지고 있다. 엄마가 식물과 나누는 교감은 고사하고, 그저 죽이지 않고 함께 오래 했으면 싶은 바람이다.


IMG_2306 (2).jpg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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