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삶, 도자기 편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취미

by 개복사

도자기가 있다. 기성 제품 말고 만든 도자기가 수두룩하게 있다. 흑유 면기 세트, 흑유 함과 청자토 함, 화분, 액세서리 트레이, 캔들 홀더, 스피커, 수프 볼, 수저받침, 밥그릇과 국그릇, 접시, 플레이트 도마, 찻잔, 컵 그리고 다양한 종지들까지. 몇 차례 불연성 마대를 샀어도 묵직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시작은 단순했다. 취미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었다. 방과 후 활동이 아닌 퇴근 후 취미 생활에는 여러 변수와 제약이 존재하고 내게는 숱한 제약들에다가 깍두기로 땀이 추가되었다. 줄줄 흐르는 땀을 지니고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일회성보다는 꾸준하게 배워보고 싶어서 오래 고민했다. 그때 많고 많은 수업 중에 도자기가 눈에 들어온 것을 운명이었다고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지만 실은, 알아본바 도자기 수업에는 물을 사용하고 그러면 손의 땀도 어떻게 잘 씻겨져 덜 제약을 받지 않을까 싶은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이전부터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지만.


첫 수업 날이 지금도 기억난다. 어둑해진 겨울밤, 송이송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공방으로 향하던 마음과 발걸음에 증폭되던 설렘이 특히나. 그래서 그날 만든 게 수저받침이었는지 액세서리 트레이였는지는 헷갈리지만, 그날의 날씨와 마음만은 유난하게 잊히지 않는다. 정말 좋았다.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수업을 거듭할수록 좋았다. 걱정과 다르게 다한증과는 무관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나와 꼭 맞아 점점 스며들었던 것 같다.


도자기라고 하면 물레 작업부터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 물레는 기초 지식이 어느 정도 습득된 숙련자가 되어야 할 수 있는 수업이다. 특히 입문자일수록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야 한다. 몽글몽글하게 남아있는 첫 수업도 그래서 물레가 아닌 손으로 만드는 판 작업이었다. 공방 선생님이 수업에 맞는 흙을 한 덩어리 잘라 주시면, 그것을 시원하게 망치로 두드려 균일한 두께로 만든 후 수저받침이나 트레이 등으로 성형하는 방식이다. 내게 그 수업의 매력은 의외의 구석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망치였다. 힘을 주는 일도 아니고 작업 과정 중 하나인데도 망치를 내리쳐 흙이 다듬어질수록 스트레스도 깎여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사람에 따라 지루하게 보내기도 한다는 판 수업이 즐겁다 못해 물레로 넘어갈 때는 아쉽기도 했다.


판 수업에서 물레 수업으로 넘어간 뒤에는, 이론은 이해되는데 몸이 따라올 생각이 없어 한동안 괴로웠다. 물레 작업을 짧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선, 흙덩어리를 뭉쳐 꼬막을 만드는 데서 시작한다. 꼬막이라는 것은 흙에 있는 공기를 빼기 위해 흙을 밀어내는 과정의 모양이 조개 모양을 닮아 그렇게 부르는데, 흙에 공기가 있으면 굽는 과정에 터져 버리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작업이다. 그렇게 만든 꼬막을 물레에 던져 고정시킨 뒤 원하는 모양에 맞춰 만든다. 그 후에 굽을 깎고 굽고 사포로 다듬고 색칠과 시유를 입혀 다시 구우면 비로소 완성이다.


그러니까 도자기는 한두 시간으로 짠-하고 완성되는 작품이 아니다. 흙이 젖어 있는 동안 하는 일이 있고, 마르는 과정을 거쳐 마른 상태에서 하는 일이 있고, 두 차례의 굽는 과정도 있고, 만드는 목적과 경우에 따라 그 사이에 수정하고 다듬는 작업도 있다. 때문에 하나의 기물을 완성하는 데에는 한 달에서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더욱이 하나의 기물을 완성한 뒤 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하나의 완성품을 만나기 전에 새로운 기물을 들어가는, 작업 과정이 긴 편이다. 집에 가장 많은 기물이 종지인 것도 그래서다. 몇 개월을 밥그릇도 하다못해 소주잔 크기도 도달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기물이 깨지지 않고 완성되어 종지라는 이름을 달았다. 하지만 이렇게 몇 문장으로 요약된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물레 작업은 매력이 많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손재주도 없는 일반인인 내가 3kg의 꼬막까지 나아가 물레를 찰 수 있었을까. 각고의 노력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때의 나는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되어 물레 안에서 더 견고하게 꽈리를 틀고 그 힘으로 삶을 버텨냈다.’고 일기에 남길 만큼 물레 작업을 했던 모든 순간이 값진 경험을 넘어서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도자기는 여전히 지금껏 경험한 배움 중 제일이다. 쉬지 않고 매주 갔던 수업에는 언제나 즐거움이 있었고, 사는 내내 저주 같았던 다한증이 처음으로 아무렇지 않았던 경험이었으며,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좋은 선생님과 호흡하며 같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을 마주하고 스치며 다음의 나를 생각하고 설계해 볼 수 있었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요즘도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그와 닮은 물레 작업을 떠올려 보곤 한다. 물레 작업은 밀고 받치는 양손의 힘 조절이 어렵고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어, 매 순간 심혈을 기울여 균형을 잡아야 한다. 무작정 물을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쓸 수도 없으며, 흙의 종류와 물의 양에 맞춰 수축률을 고려하지 않으면 원하는 크기로 완성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실패와 성공 그 어딘가의 반복이면서 반복 아닌 그 작업들이, 자꾸만 무너지는 나에게 넘어지는 법과 다시 일어서는 법을 깨우쳐줬다. 물레 판에서 계획과 틀어져 찌그러진 채로 돌아가던 미완성의 작업물은 틀린 것도 실패도 아니었다. 실패도 성공도 아닌, 그것대로의 이름이 붙여진다는 사실이 큰 위안으로 다가온다. 며칠 전에도 불연성 마대를 샀다. 언젠가는 무엇도 남아있지 않은 날이 오겠지만, 그때가 되어도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그 모든 과정이 내 안에서 든든한 거름이 되어 함께 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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