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함을 상기하는 기록
사진은 귀찮고 번거로운 것이었다. 적당한 위치에 자리 잡고 포즈를 취한 뒤에 일행이나 일행이 아닌 사람이 하나, 둘, 셋 센 뒤에 신중하게 찍어주는 것. 분명 그랬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사진 자체가 즐겁다. 원하는 배경을 어떻게 찍을까 고민하는 일도 실패한 사진을 바라보는 일도. 심지어 찍은 사진으로 달력까지 만들어 쓰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게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야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며칠 전, 운동 겸 산책하러 공원에 갔는데 사람들이 전부 한 곳을 쳐다보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고 찍나 싶어 바라보니, 달이 있었다. 놓치면 14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슈퍼블루문이었다. 그날 밤은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멈춰 서서 달을 담고 있었다. 보이는 그대로의 풍경을 담는 사람, 있는 힘껏 확대해서 달을 담는 사람, 달과 자신을 남기는 사람,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있는 힘껏 앞으로 위로 쭉 빼낸 커다란 핸드폰 화면은 조깅을 하면서 지나도 너무 잘 보였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그날은 늦게까지 사람들이 많았다. 슈퍼블루문에 옆에는 토성까지 볼 수 있는 날이었으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사진 찍는 일이 쉽다. 스마트폰이 자연스러운 세상에서 사진 찍기가 취미라는 말이 운동으로는 숨 쉬기를 합니다,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필름 값이 비싼 건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그때는 사진이 귀해서 정말 정말 중요한 순간에만 찍었다. 사진이 저장되는 앨범도 이런 작은 바보상자 속이 아니라 제법 두툼하고 큰 형체의 실물이었다. 심지어 우리 집에는 앨범도 비싸서 앨범이 아닌 사진관에서 받아온 투명봉투에 인화된 채로 있는 사진들이 아직도 있다. 지금에서는 귀찮아져서 그대로 보관하는 의미가 더 크지만, 아무쪼록 사진과 관련된 건 전문적인 분야라서 소장의 의미가 크게 부여됐던 것 같다.
예전에는 그렇게 소장하고 보관하는 의미에 비중이 있었다고 하면, 지금은 행위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 순간을 기록하는 즐거움이랄까. 스마트폰이 당연해지고 무서운 속도로 디지털 세상이 된 뒤에는 언제 어디서나 사진을 남길 수 있고 그것을 손쉽게 꺼내볼 수도 있게 되었으니까. 더는 아끼지 않고 좋은 순간을 기록하고 남기고 추억하는 것이다.
게다가 핸드폰의 용량은 이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외장 메모리카드를 달던 것도 먼 옛날 얘기같이 느껴진다. 거대한 용량에 요즘은 온라인의 보관함까지 더해져 사진의 크기가 커져도 상관이 없다. 백업도 간편하고 쉬워서 사진을 잃어버리는 경우의 수도 많이 줄었다. 반면에 사람의 용량은 여전하다. 기존의 기억에 매일 새로운 경험들이 덧씌워지며 이전 기억은 자취를 감추고 사라지는 것만 같다. 어제 먹은 아침이 뭐였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가만히만 있어도 기억과 감정은 왜곡되고 흐려지고 이내 사라진다. 하지만 사진은 그대로 있다. 망가지거나 끊어진 관계도 사진으로 보면 좋았던 찰나가 분명하게 담겨 있다.
순간을 기록하는 도구로써 사진만 한 게 있나 싶다. 찰나를 놓치지 않고 담을 수 있고, 언제든 꺼내볼 수도 있다. 같은 곳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도 보면 사람마다 다르다. 그런 점도 재밌는 부분이다. 구도도 관점도 달라 비교하는 맛이 있다. 내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것도 그래서다. 투명해서. 구구절절한 쓸데없는 꾸밈말도 거짓말도 없이 솔직해서 좋다. 특히, 찍은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 시선과 마음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점이 좋다. 가스라이팅과 분노와 혐오가 들끓는 사회에서 그런 사진 또한 무서울 때가 있지만, 내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고 기뻐하며 사랑하는지를 잊지 않게 해주는 것도 사진이라서 계속 사진을 찍는다.
하늘이 푸르게 맑아서, 읽던 책 구절이 좋아서, 달이 휘영청 밝아서, 지금 함께 있는 게 즐거워서, 음식이 맛있어서, 오늘을 남기고 싶어서, 운동을 기록하기 위해서, 다시없을 지금 이 순간을 남겨두기 위해서. 그렇게 쌓인 기록은 언제 꺼내 보아도 힘이 되니까. 다시 열어보지 않을 것 같더라도 돌아보고 추억할 수 있도록 열렬히 남기는 것이다. 시간을 멈출 수는 없으니까. 잘 찍은 사진은 잘 찍은 대로 못 찍은 사진은 못 찍은 대로 맛을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