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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판 Nov 23. 2023

불멸의 고귀한 영혼, 욥과 파우스트 이야기


얼마 전 괴테가 전 생애에 걸쳐 완성한 대작 <파우스트>를 완독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도 많았지만,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비극 2부 5막에서 파우스트가 불멸의 고귀한 영혼으로 구원받는 것을 보면서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살았는데 어떻게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었을까? 생각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괴테가 <파우스트>를 집필하는데 영감을 준 것으로 알고 있는 구약성경의 <욥기>를 꺼내보게 되었다. 욥과 파우스트, 두 사람은 사탄의 유혹(혹은 시련)을 당하는데, 그 과정이나 결말은 참 많이 다르다.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영혼의 구원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1. 하나님과 악마의 내기

 

두 작품 모두 사건의 발단은 하나님(주님)과 악마(사탄) 사이의 내기에서 시작된다. <욥기>에서는 천사들 가운데  서 있는 사탄에게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장 신실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욥을 자랑한다. 그러자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소유물을 땅에 넘치게 했기 때문'이므로 그의 모든 소유를 치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말한다. 욥의 승리를 확신하는 하나님은 사탄이 욥을 치는 것을 허락한다.  

<파우스트>에서는 주님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파우스트를 자랑하는데,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이 조금만 유혹하면 파우스트의 영혼을 자신의 길로 끌어내릴 수 있다고 장담한다. 주님은  원하는 대로 해보라고 허락하면서도 악마가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2. 시련 혹은 유혹


먼저 <욥기>의 이야기를 살펴보겠다.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 욥의 자녀들과 모든 소유를 잃게 만든다.  그럼에도 욥은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라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기도를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다시 한번 사탄을 만나 욥이 원망하지 않았음을 자랑하는데, 사탄은 욥의 뼈와 살을 치면 주를 향하여 욕을 할 것이라고 또 도발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욥의 생명은 해치지 말고 원하는 대로 해보라고 한다. 사탄은 욥의 온몸에 종기가 나게 하고 그를 괴롭게 하는데, 그의 아내가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저주하는데도 욥은 입술로 범죄 하지 않는다. 이후의 내용은 욥을 위로하러 방문한 세 명의 친구들과 욥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욥기>에 비하면 <파우스트>는 훨씬 역동적이고 서사적인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욥기>에서 사탄의 역할이 처음 부분에서 욥에게 끔찍한 시련을 두 차례 주고 나서는 이야기의 끝까지 전혀 등장하지 않는 반면, 파우스트 이야기에서의  사탄(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 앞에 직접 등장하여 그를 유혹하고 '지상에서는 파우스트가 원하는 쾌락의 삶을 살게 해 주되, 죽어서는 파우스트의 영혼이 메피스토펠레스의 것'이라는 계약을 맺는다. 그 후  쾌락을 좇는 삶을 살기로 작정한 파우스트는 마녀의 수프를 마신 뒤 30년이나 젊어진 청년의 모습이 되어, 가난하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처녀 마르가레테와 사랑에 빠진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그녀의 방안에까지 잠입하게 된 파우스트는 결국 그녀를 임신시키고 만다. 마르가레테의 오빠는 이 사실을 알고 검을 빼들어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를 죽이려고 공격하지만 악마의 위력 앞에 무기력해져 파우스트의 칼에 죽고 만다. 오빠의 죽음과 자신의 임신에 괴로워하던 마르가레테는 엄마를 죽게 만든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발푸르기스의 축제에 참석하던 파우스트는 나중에야 마르가레테가 감옥에 갇힌 것을 알고 그녀를 구하러 간다. 이미 영혼이 병들어버린 마르가레테는 파우스트를 따라 도망가지 않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지만, 메피스토펠레스의 바람과는 다르게 구원받는다. 이것으로 비극의 1부가 끝을 맺는다.


 비극 2부는 1부 출간 후 23년이 지나 괴테가 죽기 전 해인 82세에 완성되었는데, 다소 황당한 내용들이 많았다. 물론 읽는 재미를 생각하며 즐기면 그 자체로 시집을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는 있다. 희곡 <파우스트>의 거의 모든 대사는 등장인물이 각자의 생각을 한 편의 시로 읊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부 1막에서는 요정들의 돌봄과 대지의 기운으로 심신을 회복한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주도 하에 황제의 궁성에 들어가 마술로 황제와 신하들이 환상의 가면무도회를 즐기게 만들고, 재정파탄 상태에 있던 나라에 돈을 찍어내게 하여 일시적으로 나라가 기쁨에 넘치게 만든다.

환상의 마법에 맛 들인 황제는 헬레나와 파리스의 유령을 불러들이라고 명령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지하세계로 보내 유령을 부를 수 있는 향로를 가져오게 해서 파리스와 헬레나를 현신시킨다. 파우스트가 자신이 불러들인 헬레나의 모습에 반하여 그녀를 만지려 들자 두 유령은 사라져 버린다. 이 일이 있은 후 파우스트는 헬레나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마음이 병들어버린다.     

2막에서는 엉뚱한 존재가 하나 등장하는데, 파우스트의 제자였던 바그너가 여러 가지 물질을 섞어서 만든 인조인간 호문쿨루스다. 인조인간은 형상을 얻자마자 말을 하고 데몬으로써 메피스토펠레스를 알아보고 파우스트를 헬레나와 만나게 해주는 여정에 함께하게 된다. 호문쿨루스의 안내를 따라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에 참여하게 된 셋은 각자 축제의 공간을 헤매며 자신들만의 경험을 하는데, 호문쿨루스는 결국 소멸된다. 3막에서는 메피스토펠레스가 만든 가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헬레나에게 피할 수 없는 덫을 놓아 파우스트와 만나게 해 준다. 파우스트는 헬레나와 사랑에 빠져 아들까지 한 명 생기지만 그 아들은 이카루스처럼 하늘을 날으려다가 떨어져 죽고 만다. 헬레나도 아들을 따라 사라지고, 파우스트는 구름에 감싸여 고산지대로 옮겨진다.     

4막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이 정도로 경험하게 해 주었으면 파우스트가 만족하리라 생각하지만, 파우스트는 큰 땅을 차지하고 그 땅을 개간하여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도시를 만드는 꿈을 꾼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가 원하는 땅을 차지하게 하기 위해, 반란군과 전쟁 중에 있는 황제를 도와 전쟁에서 승리하게 만들어 그 보상으로 파우스트가 해변의 땅을 하사 받게 만든다.     

5막에서 아주 늙은 몸이 된 파우스트는 해변에 둑을 만들어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땅을 개간하고 도시를 건설한다. 파우스트는 개간한 땅에 만족하지 못하고 언덕 위에 있는 노부부의 땅을 욕심내다가 그들을 죽게 만든다.


<욥기>는 욥이 일방적으로 시련을 당하고 그것을 견디어내는 것이 주요 내용인 반면,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이끄는 대로 파우스트가 쾌락적인 삶을 살면서 죄를 짓고 고통을 당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3. 시련의 결과 (축복 혹은 구원)


<욥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끔찍한 시련으로 가족과 재산을 잃고 자신의 몸마저 견디기 힘든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욥은 친구들과의 논쟁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의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던 중 하나님이 말씀이 욥에게 임한다.  하나님은 자연의 돌아가는 이치와 생명의 기이한 모습들,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손 아래에 있으며 하나님의 힘이 미치지 아니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욥이 스스로의 능력과 경건함으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것을 들려준다. 하나님의 말씀 후에 욥과 친구들은 회개하였고, 끝까지 인내한 욥에게는 이전보다 갑절의 축복이 임하면서 욥은 그 후로 오랫동안 평안히 잘 살다가 늙어서 죽음을 맞이한다.


욥기의 결말이 비교적 단순한 반면, 파우스트의 삶의 끝은 몹시 비극적이다. 자신의 욕심으로 노부부를 죽게 만든 것에 고통스러워하던 파우스트는 도시를 빨리 개간하여 사람들이 편안히 살만한 곳을 만들고 싶은 욕망에 집착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가 곧 죽게 될 것임을 알고 그의 무덤자리를 파게 한다. 파우스트는 근심이라는 어둠의 영에게 이끌리어 눈이 멀게 되는데, 눈이 먼 상황에서도 도시의 건설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그러다 결국, 악마와의 계약에 따라 해서는 안될 말('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을 하고 쓰러져 죽음을 맞이한다. 파우스트는 고뇌에서 해방되기 위해 악마와 거래했지만, 악마의 의도대로 잠시의 쾌락은 맛보았을망정 더 큰 고통과 번뇌의 삶을 살다가 비극적으로 죽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죄를 짓고 산 파우스트의 영혼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것이 되지는 않는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놓치지 않으려고 다른 악마들까지 불러들이지만, 이미 천사들이 몰려와 파우스트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영혼소생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힘이 얼마나 강렬한지 메피스토펠레스마저도 천사들의 속삭임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결국 고통 중에 죽음을 맞이한 파우스트의 영혼은 고귀한 불멸의 영혼으로 승화하여 천상의 세계로 옮겨지는데, 파우스트의 영혼을 마지막으로 이끄는 존재는 다름 아닌 비극 1부 끝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지만 구원받은 마르가레테의 영혼이다.





경건한 욥이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최고난도의 시련을 다 이겨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아무리 봐도 그는 구원받을만한 인생을 살지 못했다. 최고 수준의 학식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생무상의 감정에 빠져 고뇌하다가 어둠의 영역에 마음을 쏟은 파우스트. 메피스토펠레스의 인도 하에 그가 겪었던 일, 행했던 일들은 결코 아름답거나 고귀하지 못했으며 실패작이고 비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는 왜 불멸의 고귀한 영혼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을까? 나는 그 답을 <비극 1부> 시작 전에 나오는 <천상의 서곡>에서 주님이 악마에게 하시는 예언의 말씀과 비극 2부 5막에서 찾았다.


주님은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어둠으로 유혹하는 것을 허락하면서 언젠가는 메피스토펠레스가 부끄러운 얼굴로 자신을 찾아와 이렇게 고백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 착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알고 있더군요.”라고.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훔치는데 실패한 뒤, 주님을 다시 찾아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작가가 이 작품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바를 추측해 보자면, 고뇌하는 인간인 파우스트는 그 선량함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충동에 휩싸여 많은 죄를 짓지만, 죄 가운데에서도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애썼다. 종국에는 악마와의 계약대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만 주님은 천사들을 보내 그 영혼만은 불멸의 안식을 얻도록 해준다. 

결국 파우스트 영혼의 구원도 그의 행위가 선량해서라기보다는, 주님의 은혜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주님이 원한 것은 완벽하게 선한 인간이 아니라 선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쓴 인간인 것이다. 철학자 파스칼의 명언,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위대함과 비참함을 함께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말이 파우스트에게도 적용된다고 하겠다.


파우스트는 고뇌에서 해방되기 위해 악마와 거래했지만, 잠시의 쾌락은 맛보았을망정 더 큰 고통과 번뇌의 삶을 살고 말았다. 선의를 품고 있는 사람이 어둠의 힘에 의지했을 때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인간의 삶이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아무리 힘들어도 악의 에 의지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참고도서> 파우스트 1,2/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정서웅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구약성경 <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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