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살아있음을 중력이라 생각했다. 단단히 삶에 뿌리박고 모진 비바람과 폭풍 속에서도 둥실하고 날아가버리지 않게 하는 힘. 어쩌면 그는 저를 붙잡아 두는 힘이 조금 약하게 태어난 걸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가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 가족, 아끼는 모든 것들이 그에게 하루를 더 살아갈 힘이 되어주기에는 부족했다. 언제나 이들을 두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매일을 죽은 듯 살아가는 그의 삶은 언제나 깜빡거렸다. 언제든 떠날 마음을 하고 살아가는 그의 인생은 그래서 작은 바람에도 쉽게 날아가버리던 그를 세상에 붙잡기 위해 발버둥 쳤던 날들이었다. 울고 또 울부짖었던 밤들에 그는 몇 번이고 떠오르려는 몸을 양 팔로 붙들고 바닥에 웅크리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를 떠오르지 않게 짓누르는 건 삶의 고단 함이었다. 육신은 현실에 짓눌리면서 영혼은 두둥실 날아가지 못하게 붙잡아야만 하는 삶. 집 안은 가난이 발밑에 들러붙어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아 쩍쩍 소리를 내고, 집 밖은 어디 하나 머물 곳 없어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한숨만을 가득 모아 볼품없는 모양새를 한껏 부풀린 그는 한숨의 무게에 붙들려 땅 위의 날아오르지 못하는 풍선이었다. 그는 떠오르지 않기 위해 또는 짓눌리지 않기 위해 애썼으며 그가 한숨마저 쉬지 못할 만큼 힘겨운 때에는 볼품없이 쭈글거려 어떠한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살아있다는 감정이 이토록 희미했다.
그는 그나마 숨고를 힘이 남아 있을 때, 다시 일어나고 싶을 때 카메라를 든다. 그에게 스스로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소소한 행복의 순간은 언제나 그의 카메라와 함께였다. 카메라가 가진 세월은 숨길 수 없어 묵직한 검은빛의 표면이 닳아 드러난 황동의 따뜻한 빛과 함께 오래된 시간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날이 유독 흐린 오늘도 그가 가라앉은 기분을 달래기 위해 부러 카메라를 들고 집 밖을 나선 그였다. 새로운 필름통을 꺼내 필름실을 열어 필름을 스풀의 작은 틈에 끼웠다. 와인딩 레버를 젖혀 필름이 스풀에 단단히 말리는 것을 확인하고 더 이상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닫았다. 총을 장전하듯 와인딩 레버를 당겼다. 필름통에서 끌어당겨진 필름이 한 칸 이동한다. 그가 초점을 맞추고 숨을 멈춘 뒤 셔터를 누를 때 닫혔던 셔터막이 열리고 이윽고 필름은 자신이 처음 마주한 빛의 순간을 몸에 오롯이 담을 것이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카메라와 함께 걸을 때면 그에게 어렵고 힘들기만 한 세상도 사진을 핑계 삼아 참 아름답다고 둘러댈 수 있었다.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들어온 그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가 사진을 찍게 된 첫 계기는 기록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의 삶을 지탱하는 무게추였다. 거짓으로 자신을 부풀리지 않아도 억지로 그를 삶의 방향으로 끌어내리지 않아도 카메라는 적당한 삶의 무게로 그를 붙잡아주었다. 카메라 뒤에서 그는 현실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관찰자로서 세상을 관망할 수 있었고 그런 그에게 뷰파인더 속의 풍경은 영화이고 소설이고 시가 되어주었다. 걷고 마주하는 것들을 소중히 하며 셔터를 누를 때, 누르기 위한 순간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을 때 세상도 곁에서 그 한순간의 모습을 담기 위해 잠시 잠잠해지곤 했다. 고요한 세상 속을 가로질러 울리는 금속의 마찰음은 차가웠지만 그 찰칵이는 소리에 때때로 그는 왈칵 눈물이 나곤 했다. 마주한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풍경에 눈이 시리도록 아파서 눈물이 나는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품 속에 넣어놓고 꺼내보고 싶은 풍경, 눈으로 보고 있어도 꿈결 같은 순간, 그때에 그는 셔터를 눌렀다.
필름에 가지런히 그의 풍경들이 쌓였다. 한 롤을 부지런히 찍는 것은 스스로의 생활도 바쁜 그에게 꽤 어려운 일이어서 현상을 맡겨 결과물을 볼 때면 계절이 지나가있기도 했다. 한겨울에 보는 여름사진이나 이듬해 봄에 보는 가을사진 같은 것은 타임머신같이 그의 눈길이 멈췄던 그곳, 그 시간으로 데려가 주었다. 시간과 그 순간 그가 느꼈던 감정이 엉겨 붙어 있기에 사진 속 그 장소는 이제 고유해졌다. 그런 모든 순간을 함께 했기에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순간을 고대하며 누구를 사랑하는지 그의 카메라는 묵묵히 알았다. 그래서 그에게 카메라와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솔직하고 확실했다. 무형의 것들에 형태를 부여하게 되는 찰나. 그리고 그 잔상을 영원하게 하는 마법. 꿈결같이 완벽한 순간에 그는 기꺼이 그 마법에 기꺼이 속곤 했다. 구태여 행복이 이곳에 머무르도록.